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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Jun 29. 2023

괜찮다는 건 뭘까

회복의 신호

 * 본 글은 범죄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사건의 대한 모든 내용은 실제 사건들을 기반으로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뉴스젤리'의 "데이터로 보는 시대별 이름 트렌드, 요즘 핫한 이름은?"에서 무작위로 따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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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제쯤 괜찮아지나요?


피해자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글쎄요. 괜찮아진다는 게 뭘까요.


그럴 때 이렇게 반문하면 대답도 거의 비슷하다.


사건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요.


안타깝게도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고 해도 기억이 있는 한 사건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 범죄피해의 온전한 증거인데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을 죽이면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추가 피해자가 생길 뿐이다. 예를 들면 피해자 자신의 가족처럼.


피해자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자신의 회복을 바랄 사람일 것이다. 다만 그 방법과 괜찮아졌다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한 번도 범죄 피해 이후 괜찮아졌다는 게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다.


스마일센터에서 발간한 「외상 후 회복을 위한 안내서」에서는 외상 후 회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트라우마 이후의 회복은 '그 경험을 잊는 것' 또는 '그 경험이 떠오를 때 정서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회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 말고 몸으로 생각해 보자. 몸을 다쳤을 때 우리는 언제 괜찮아졌다고 하는가? 어쩌다가 피부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다면 괜찮아지는 시기는 아마 찢어진 부위가 아물었을 때일 것이다. 그럼 흉터는? 흉터가 생겼다면 영영 괜찮아질 수 없는 걸까?


살인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 가정의 유일한 경제활동자였다. 은주씨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유족이자 피해자였다. 은주씨는 남편과 사이가 좋았다. 남편은 몸이 약한 은주씨를 늘 염려했고 아이가 태어나고 양육을 도와줄 가족이 없어 결국 은주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일은 점점 더 잘 됐고 은주씨도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면서 부부간의 사이도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던 남편이 일과 관련된 사람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은주씨는 마음속 어딘가가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처음 은주씨를 만났을 때 은주씨는 나에게 뭔가 요구하거나 물어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조용했고, 조용히 울었다. 남편의 시신은 부검을 위해 국과수에 가있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설명을 드린다고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첫날은 명함과 함께 자기소개만 하고 끝이 났다.


은주씨가 돌아간 후 뭐부터 하면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범죄피해평가를 진행하기로 했다. 범죄피해평가를 통해서 은주씨의 현재 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스크리닝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지금 당장 장기적인 심리상담을 하기는 어려운 은주씨에게 1회기성 상담의 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음은 소모품이다. 은주씨는 마음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머리도 없어진 건지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2차 피해평가가 끝난 후 은주씨는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저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피해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하기사 한 번을 하기도 쉽지 않은 경험이니까. 당시 은주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직후였다. 그리고 범죄가 발생한 장소는 남편이 일하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사무실 임대료를 건물주한테 몇 달치 보냈어요. 그분도 피해자니까요.

일단 건물주 연락처 저한테 알려주시겠어요?


은주씨는 경황없는 와중에도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꾸 밖으로 마음을 쓰려고 하다가 가족과 자신을 놓치게 될까 봐 염려가 많이 됐다.


혈흔과 지문을 확인하려고 사무실에 가득 뿌려둔 약품이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사무실을 청소하고, 도배를 새로 했다. 아주 덥고 습한 여름이었다. 특수청소 업체를 찾아 청소와 도배를 새로 해주겠다고 건물주에게 말했더니 실은 그게 고민이었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강제 진입을 하는 과정에서 뜯긴 현관문도 새로 해주기로 하고 선납받은 월세는 일부 돌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었을 때 은주씨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이것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것도 지원제도가 있나요?


그게 회복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상황을 인식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 살아가야 하니까 그 방법을 현실에서 찾는 모습이 스스로를 돕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것을 구분했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나는 많이 기뻤다. 남편을 돌려드릴 수는 없어도 아이와 살아가는 데 도움을 드릴 수는 있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보면 회복이 뭐 별 건가? 다들 저 정도는 당연하지 않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지원을 받던 중 사라지곤 한다.


대놓고 자꾸 그때 생각이 나니까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내게 화를 내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전화번호를 바꾸기도 하고,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들은 괴롭고, 회피는 직면보다 편하다.


웹툰 「극락왕생」에서 주인공 '자언'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도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보지 않으려는 죽음의 진실을 자꾸 같이 보자고 떠밀고 끌고 가는 '파순'이 있다. '파순'은 기어코 '자언'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하게 만들고 만다. 어쩌면 피해자들에겐 '파순'처럼 내가 보일지도 모른다. 심리상담사도 마찬가지고. 자언아 도명이한테 솔직하게 말해!!!! 나를 비롯한 모든 독자들의 마음이 아닐까?


그게 회복이다. 괜찮다는 건, 마주하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보자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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