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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검 Mar 29. 2023

재미있는 연변말 12탄-치새하다

2023년도 이젠 3개월이 지났다. 근데 왜서 일까

2022년 365일, 아니 이미 지나온 3년 보다도 시간이 더 많이 지난 같다.


그동안 "코로나"라는 보이지 않은 쇠창살에 갇혀,

그리고 "마스크"라는 패션 아닌 패션을 강제 착용해서 그런가.

3년 기간 해놓은 일도 별로 없어 거의 멈춰 선 듯싶지만 얼굴엔  잔주름이 늦가을에 서리처럼 살며시 내렸다가 이젠 대놓고 판도를 넓혀 가고 있다.

마치 돌고루키가 손바닥만 한 모스크바 강 옆에 작은 마을을 세운 후  그 자손들이 하나둘씩 서쪽으로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듯이 말이다.


거의 외진 섬에서 도를 닦듯이 조용히 지낸 시간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게 변해 있었다. BRT가 들어선 중심가를 따라 서쪽으로 휘황찬란한  LED의 성연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는 때로는 오색찬란한 때로는 강열한 붉은 색채를 토하며 때로는 도안이 때로는 성스럽고 풍요로운 화면들을 회백색 건물벽에 쏘고 있다.  

공원 안을 따라 들어가도 마찬가지이다. 저녁이 되면 그 초입부터 하나같이 붉고 황색 빛이 감도는 전구들을 휘휘 감은 나무들이 태평무를 추는  젊은 여인네처럼 평화롭게 서있다.


사진 1 연길공원 내 조경수(출처:victor0116)와 태평무를 추는 여인들, (출처: 위키백과)


이즘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치새하다"이다. 칭찬하다는 뜻을 갖고 있는 연변말이다. 치세(治世)와 발음이 비슷하여 헛갈릴 수 있으나,  그 의미가 판판 다르니 주의하도록 하자.


물론 고금중외 다 그러하다시피 조선시대 왕들도 자기의 치세를 치새하는 것을 엄청 좋아한 모양이다. 당시 궁중무용의 종류의 다종다양함을 보아도 미리 알 수 있다.

이미 삼국시기와 고구시대 무용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도 모자라서 더욱더 발전시켰는데 그 정도가 극에 달했다.

몽금척무(梦金尺舞),  수보록무(寿福禄舞), 근천정무(觐天庭舞),수명명무(受明命舞), 하황은무(菏皇恩舞),하성명무(賀聖明舞),성택무(聖澤舞),곡파무(曲破舞),문덕곡무(文德曲舞),봉래의무(凤来仪舞) 등등등.


벌써 봄바람 따뜻한 날

경회루 높은 곳에, 일월오악도를 병풍으로 삼아, 보좌에 비스듬히 앉아

악사들이 뜯는 거문고와 퉁소소리와 명창의 청아한 꾀꼴 소리를 들으면서

궁녀들의 우아한 춤사위를 보면서 술 한잔을 기울일 국왕의 모습이 그려진다.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봄향기에 취할까

아니면 팔도에서 뽑아온 절세가인의 춤과 노래에 취할까

아니면 태평스럽고 성세스러운 그 분위기와 만세상 태평치하에 취해서 취할까.


조선의 왕들은 보편적으로 술을 좋아한 모양이다. 거의 조회(朝会,대궐에서 아침에 열리는 회의)가 끝나면, 국왕이 술자리를 조직했다고 한다. 국왕과 대신 사이에 술이 오고 가면서 때론 정치에서 생겼던 모순들을 해결하는 윤활제로 활용하기도 하고, 가끔은 대신들을 만취하게 하여 취중진담을 토하게 하는 왕도 있은 모양이다.

당연지사지만, 술을 자주 마시면 자연스럽게 궁녀에 대한 사람도 대단하였을 것이다.


임금은 하늘, 신하는 땅이라 쇠뇌하는 조선시대에 당연히 대부분 신하는 불이익 때문에 왕한테 알랑방귀 뀌기 급급해했겠지만 다행히 와중에 성품이 대쪽 같은 신하가 있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직언하기도 했다.


영조 30년(1754년) 10월 30일 홍문관 수찬 조엄이 아뢰었다.

"...... 술과 여색은 사람을 죽이는 도끼여서 젊은 자도 경계해야 하는데, 더구나 노인은 어떠하겠습니까?......"

이에 당시 60세 나이가 된 영조는 답한다. "유신이 이런 말을 하여 참으로 가상하게 여긴다. 내가 마땅히 유념하겠다." 이런 걸 봐서는 유흥을 좋아하는 영조라도 어느 정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영조가 82세까지 장수한 것도 이런 자제력 때문에 아닐까?


대신 "흥청망청" 신조어를 만들어낸 연산군(1494~1506 즉위)인 같은 경우는 거의 향락의 끝판왕이나 다름없었다.

『연산군일기』에는 경복궁 경회루에서 연산군이 자주 잔치를 베푼 모습들이 나타나 있다.   “경회루 연못가에 만세산(萬歲山)을 만들고, 산 위에 월궁(月宮)을 짓고 채색 천을 오려 꽃을 만들었는데, 백화가 산중에 난만하여, 그 사이가 기괴 만상이었다. 그리고 용주(龍舟)를 만들어 못 위에 띄워 놓고, 채색 비단으로 연꽃을 만들었다. 그리고 산호수(珊瑚樹)도 만들어 못 가운데에 푹 솟게 심었다. 누각 아래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흥청·운평 3천여 인을 모아 노니, 생황과 노랫소리가 비등하였다.”

- 신병주 교수의 <사심 가득한 역사 이야기>에서


왕이 이러할 진대, 당연히 간신이 난무했으니 이로해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과 역사를 그대로 재현한 "간신"이 출현한다. 희대의 간신이었던 임승재가 제 애비 임사홍과 함께 조선팔도 미녀를 색출해서 연산군에게 갖다 바치면서, 미녀들을 통해 왕을 움직이려고 했다는 설정이다. 주제상 19금이 될 듯 말듯한  장면이 나오니깐 보실 때 감안하고 보시기를.


사진 2. 영화 "간신, 2015년" 포스트


물론 모든 치새가 나쁘것은 아니다. 높은 사람이나 상대한테 잘 보여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는 아부와 아첨이 심하면 나쁘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주인을 만나면 반갑다고 꼬리 흔들면 달려드는 걸 싫어할 사람이 적을 것이다. 결백증이 있거나 혹은 강아지 자체를 싫어하지 않은 상.

  

 그 정도를 잘 조절하면 적극적인 작용도 가능한 것이 치새이고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적당한 칭찬은 가정의 화목을 불러오는 필요한 요소이다.

어설픈 나그네의 연기(演技)에도  밥주걱을 쥔 아낙네의 팔이 춤추고 시장 가는 걸음이 흥겨워진다. 그리고 엄마아빠와 반주임선생님의 "잘한다"는 말 한마디가  시들었던 어린 마음에 희망의 씨를 내리고 축복을 주어 꽃을 피우게 한다.


    사진 3. 춤추는 범고래. 출처:pixabay


다만 과유불급(过犹不及)만을 경계해야 할 뿐이다. 치새도 정상을 넘어 차고 넘칠 때 그것은 칭찬만이 아닐 것이니 항상 경계하도록 하자.


이상 재미있는 연변말 12탄-"치새하다"였습니다.


백검


2023년 3월 29일 오후 2시 28분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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