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내일은 더욱 밝아 질까?
딸래미가 1년 후면 대학 입시라, 공부스트레스도 풀어 줄 겸 그리고 좀 괜찮은 대학들을 미리 보게 하여 동기부여도 해 줄 겸 겸사겸사 홍콩투어를 기획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있다. 나이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말이다.
70년대에 태여 난 우리한테 홍콩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우선은 영화다. 성룡과 홍금보 등등의 액션영화 특히 "취권"과 "폴리스스토리 시리즈" ; 주윤발과 유덕화의 누아르영화와 카지노 영화, 주성치의 코미딕 하면서도 패러디와 과장 그리고 허무 맹랑함이 섞여 있고 마무리에 인생철학이 가미되어 있는 영화에 익숙되어 있었서 이다.
어렸을 때에는 담배연기 자욱한 동네 비디오 방에서,
대학을 간 후에는 중관촌 가교 앞에서 애기를 둘쳐 엎은 장사군들의 수중에서 산 VCD 등에서 보면서 홍콩이란 세계를 알게 되었다. 대학 2학년 때에 홍콩귀환과 겹쳐져서, 숙사 복도에 있는 공용 TV를 통해서 홍콩반환행사 생중계를 보면서 감동에 북받쳐 눈물을 훔치던 순간도 은은히 생각난다.
다시 본문의 시작화두로 돌아가서 홍콩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 철없던 시절에 그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본 홍콩은 신기루에 가까운 미지의 세계였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30여 년 이 지난 지금 지천명(知天命)에 들어선 나의 눈으로 본 홍콩은 또 다른 의미가 분명히 있다.
일단 홍콩투어를 위해 자료를 정리하면서 과거 홍콩에 대한 알듯 말듯한 혹은 아예 어렴풋한 구석들을 정리해 보았다.
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많으나, 송나라 때부터 홍콩에서 머지않은 과거 동관현(东莞县) 및 신안현(新安县)에서 향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하였 는데, 가공한 제품들이 육로로 침사추이(尖沙咀)까지 운송해 온후 다시 항구를 통해 동남아 혹은 아라비아 각국에 운송했다고 한다. 하여 고대 때 침사추이를 향부두(香埠头)로 불렀으며, 이것이 후에 와서 자연스럽게 홍콩(香港)으로 지명이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1840년대 아편 전쟁 후 홍콩에 있는 빅토리아항의 우월한 항구조건과 중국 유일의 대외통상창구인 광주(广州)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관계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청나라 황실과 지리적으로 가장 먼 관계로 영국에 99년 조차 하게 된다. 영국에서 원래는 비단 주요 산지와 가까운 상해 주변의 섬-舟山岛를 조차 하려 했으나 청나라 황실의 반대로 무산되어, 당시만 해도 어촌에 가깝지만 아편무역항으로 두각을 드러낸 홍콩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99년 영국의 통치는 홍콩에 영국의 낙인을 찍어놓았는데, 그중 전형적인 것이 언어이다. 영국식 영어가 광동말과 공동으로 공용언어로 적용되고, 따라 공공기관이나 백성들이 대량으로 영어를 사용하게 된다.
언어 외에도 제도적인 면에서도 영국제도를 그대로 적용하였다. 예를 들면 경찰시스템, 그리고 지금도 그 잔휴가 남아 있는 좌측통행과 전기 콘센트 등등이 있다.
역사가 참 아이러니한 게 홍콩 99년의 조차가 세계적인 무역항 그리고 금융 허브로의 홍콩의 입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영국식민지인 홍콩의 독특한 정치적 위치, 그리고 지리적 위치로 인해 홍콩은 중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마다 후방 물류 및 군자금 조달 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외 60~70년대에 홍콩은 중국의 유일한 무역출구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과 물자를 교역하는 유일한 창구역할을 하였다. 어찌 보면 이 당시 중국의 대외무역 대부분을 홍콩자유무역항을 통해서 소화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도 중국 투자환경이 아직 차하고 관련 정책이 미비하여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를 망설일 때에도 홍콩기업들과 투자자들이 중국 내륙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국 첫 번째 외자합작기업, 중국 첫 번째 오성급 호텔 등등이 홍콩의 투자로 이뤄졌는바 개혁개방이래 홍콩은 줄곧 가장 큰 중국투자출처로 떠올랐다. 통계에 의하면 2022년 말까지 홍콩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가 누계로 15703억 딸라로 전체 외자이용액의 58.6%에 달했다. 이외 중국 발전에 필요한 자금뿐만 아니라 관리시스템 인재들을 제공하여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였는바 어찌 보면 홍콩의 투자나 지원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발전한 중국이 있었을까 싶다.
물론 홍콩 기업들도 대륙에 투자함으로써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맞기도 한다.
영국 치하에서 홍콩은 서방과 중국사이에서의 독특한 입지로 경제적인 면에서 괄목상괄한 발전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서방을 포함한 각국에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포용함으로써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불교. 도교.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 힌두교. 시크교 등 종교가 함께 어울려서 지내는 지역으로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영국의 식민지하에 기타 동남아 지역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그리고 경제발전 때문에 중국대륙에서 이탈하여 홍콩에 정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내전을 겪은 미얀마나 베트남에서 생계와 정치핍박을 피해 도망쳐온 사람들, 필리핀에서 가정주부로 홍콩으로 돈 벌로 온 사람들. 이외 영국식민지 시절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경찰이나 군대로 홍콩에 파견되어 왔던 사람들 등등이 주요한 원인이 되겠다.
다양한 종족. 문화의 유입으로, 홍콩사회가 초기에는 치안 및 정치적인 면에서 어수선했던 면도 없진 않았으나 그것이 빛을 보게 된다.
그 꽃이 바로 영화라고 본다. 격변기의 홍콩사회가 상대적으로 포용적이었던 문화관리 제도가 영화와 드라마 등등 미디어로 이어진다. 장르도 액션영화, 카지노영화, 누아르영화, 멜로영화, 에로영화 등등에 구애받지 않았고 주제면에서도 막힘이 없었기에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70년대, 80년대 홍콩에 비해 폐쇄적이었던 전두환 군부독재시절의 한국이나 전국을 강타한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심적으로 움츠러들었던 대륙사람들한테 신선함과 함께 동경의 대상을 되었음은 자명하다.
홍콩의 액션영화는 서방세계에도 신선함을 안겨주었으며 무술 배우기 붐을 일으켰다.
햇빛이 찬란할수록 그림자가 더욱 깊어지는 법이다.
홍콩의 독특한 지리적 입지와 국제정세로 인해, 21세기에 그 후광을 톡톡히 받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이 심화되고 이어 홍콩이 1997년에 귀환됨에 따라 중국에서 차지하는 그 위상이 날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신속한 발전의 이면에는 점차 또 다른 문제들이 점차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중 가중 부각되고 있는 것이 빈부격차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고층빌딩의 뒤면에는 닭장 같은 혹은 관처럼 사람이 누우면 다른 공간이 없는 캡슐 같은 건물들이 즐비한 것도 문제가 되어 왔고, 홍콩 누아르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깡패나 양아치가 휘젓고 다니는 무법지대 무풍지대가 되기도 했다. 홍콩의 모 자선단체에서 발표한 "홍콩빈곤상황보고서 2024년"에 의하면 2024년 1/4분기에 홍콩의 전반 빈곤율이 20.2%에 달하여 생활이 궁핍한 사람이 139만 명으로 집계된다고 한다. 잘 사는 사람과 빈곤한 사람의 빈곤격차가 81.9배로 벌어지기도 한다.
빈부격차도 문제지만 요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동시에 좀 민감한 문제가 홍콩사람들의 귀속감과 정서문제이다.
당초 홍콩 1997년 중국반환에 대비해, 등소평이 1984년에 제출했던 것이 일국양제(一国两制)이다. 당시 일국양제, 즉 하나의 중국을 승인하는 조건하에 홍콩에서 고도의 자치를 실시하여 홍콩사람들에 의한 홍콩통치를 실시하고 홍콩 당시 자본주의제도를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것으로, "중영연합성명(中英联合声明)" 제3조 및 첨부조항에 규정하였다.
실시과정에 홍콩 일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불만감이 쌓이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시위 등으로 이어졌다.
홍콩이 세계 3대 금융 및 자유무역항으로 성장한 데는 홍콩의 지리적 위치도 있겠지만, 중국과 서방을 이어주는 그 이점이 큰 같다.
하지만 개혁개방으로 장강삼각주가 상하이를 주축으로 절강과 강소가 두 날개가 되어 새로운 물류 및 무역 금융허브로 떠올라 홍콩의 과거 역할을 희석시키고 있고,
트럼프 1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지금도 진행 중인 중미무역전쟁(中美贸易战争)으로 홍콩과 서방의 연결고리들이 미국의 정책변화에 따라 싱가포르로 많이 옮겨간 상황이고 계속 진행 중이다.
여기에 2020년에 국가안전 관련 법이 통과된다.
옛날 중국 남쪽의 어촌에 불과하던 작은 항구가 지금의 홍콩으로 발전하게 온 추진력이 하나씩 사라짐에 따라 홍콩의 미래는 조금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남아와 중동지역 국가와 중국의 무역이 발전함에 따라, 그 중간에 있는 홍콩이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포착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홍콩 투어 하면서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홍콩 관련 전문가가 아니고, 그저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던 점을 정리하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