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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때 그 맛-왕청면

더 싸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푸짐하게

by 백검

지난 편 “가미치”를 보고 공감해 주는 분들이 많으셔서 감사하단 말을 우선 드리고 시작한다.

항상 내가 쓰는 글들이 문자 게임에 지나 칠까 그리고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한 글이 될까 경계하면서 필을 든다. 또한 내가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단어 하나하나가 괜히 과잉 정보시대에 데이터 쓰레기 중의 하나가 되어, 남들한테 피해 주지 않도록 항상 조심한다.


오늘 역시 30년 지난 세월을 , 연어처럼 힘차게 거슬러 올라가 다시 찾아가보려고 한다. 과거 추억 속으로의 여행은 마치 만화경(萬花鏡)을 보는 같다..


지금 뒤돌아 보면 그저 옷깃을 스쳐간 인연뿐인데 그 순간을 잊지 못해 담뱃불로 손등을 지지던 친구의 허무맹랑했던 얼굴이 보이고, 일본 만화 매니아였던 한 숙사 동창 덕분에 보풀이 일 정도로 돌아가면 보았던 칠용주(七龍珠, 드래곤볼)가 떠오르기도 하다.

출처: 구글에서 검색


이외 학교에서 숙사를 전문 관리하는 교감선생님이 계셨는데 매우 엄격하신 분이셨다. 마치 군대에서 당직사령관이 순시하듯 매일 아침 기상시간과 저녁 소등시간 맞춰 숙사를 샅샅이 검사하셨는데, 어느 장난기가 발동한 개구쟁이 동창이 문손잡이에 고추장을 잔뜩 발라 놓아 남자숙소건물을 왈칵 뒤집어 놓은 적도 있었다. 다들 의리를 지켜 함구하는 바람에 우리 남학생 전체가 구두 경고받았던 걸로 알고 있다.

여하튼, 학교와 숙소 사이에서 일직선에 가까운 생활을 했지만 이모저모로 에피소드가 소소히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메인은 공부였다. 특히 우리 학년 같은 경우 교육부에서 대학등록금 관련 개혁을 진행하여 이듬해부터 개인부담금이 대폭 상향한다는 소문이 있어, 무조건 1번에 대학 붙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다른 시간을 최대한 줄여 공부에만 올인했다.

그중 하나가 밥 먹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식사시간을 앞뒤로 조절하여 식당에서 줄 서는 시간을 되도록 줄이고, 동시에 밥을 먹는 시간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사진 출처: BAIDU AI로 합성


평소에 요조숙녀라고 평판이 자자했던 한 여자 동기가 왼손과 오른손을 함께 사용하여 식사를 3분 안에 해결한다는 소문이 난 후, 식당에서 두 손으로 부리나케 식사하는 동창들이 많아졌다. 마치 폭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 듯이 후다닥 해치우는 병사들처럼 진짜 다들 전투식으로 식사를 했던 같다.


어찌 보면 그 순간은 음식을 음미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저 공부를 하기 위해 배에도 에너지를 집어넣는 과정으로 마치 차량에 휘발유를 주유하는 것과 같았던 같다. 3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항상 상냥했던 식당 아줌마들한테 미안하지만 식당음식이 어떤 맛이었던지 전혀 기억 안 난다.


대신 학교에서 평일 자습시간이 끝난 후 모교 서문(西門) 편의점에서 먹던 편의국수가 생각난다.

마침 딸내미가 다니는 학원이 모교 부근에 있어 우연하게 지나가다가 사진을 남겼다. 30년이 지났으나 서문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은 같다. 철문도 그대로 인 같고 우리말과 한어로 된 양옆의 기둥도 그대로인데, 다만 원래 왼쪽 기둥 옆에 있던 편의점이 사라 졌다.



학창 시절 딱친구와 참 자주 다녔던 편의점이었는데 많이 아쉽다. 자습이 끝나는 저녁 10시면 편의점에 달려가서 왕청면을 주문하고 담소를 나누면서 잠시나마 머리도 식히고 허기진 배도 채웠었는데 말이다.



여기서 간단히 짚고 넘어갈 것은 라면은 일본이나 한국에서 쓰는 용어이고, 중국에서는 라면은 손으로 직접 뽑은 수타면을 가리키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란주라면(兰州拉面)이다. 한국의 라면은 중국에서 주로 方便面(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국수, 간단히 편의국수 )라 부르며, 간혹 即食面(즉석에서 먹는 국수) , 泡面(뜨거운 물에 불궈 먹는 국수), 速食面(빨리 먹는 국수), 快熟面(빨리 먹는 국수) 등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왕청면은 연변 왕청(汪清)이란 지방에서 80년대 말기 중국 경공업의 중심인- 상해에서 편의국수 생산라인을 들여와서 당시 유명했던 上海 美味肉蓉面을 복제하여 만들어서 판매한 것으로, 연변에서는 간단히 왕청면이라고 불렀다. 포장에 당시 유명한 美味肉蓉面을 대부분 그대로 적용했다. 그때는 지적재산권이나 상표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고 중국경제가 계획경제에 훨씬 가까웠던 시기라 상해에서 생산라인을 들여오고 포장지도 함께 들여오다 보니 국수맛은 그대로 상품포장은 上海 美味肉蓉面과 대동소이한 정도였다.


美味肉蓉面은 당초 상해에서 개발할 때 상해 주변 사람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당연히 그것을 복제해 온 왕청면 역시 우리 입맛과 약간 거리가 있었다. 좀 슴슴하여 국수를 삶은 후 그 위에 매콤한 도라지 무침이나 소힘줄 무침을 넣어 함께 먹으면 구수하면서도 살짝 매콤한 맛이 올라오고 씹는 느낌이 추가되면서 우리가 원했던 맛으로 조합되었다. 가격도 저렴 했는데 둘이 먹으면 1위안 정도 된 걸로 기억된다.


가끔 소시지를 추가해서 먹기 좋게 넣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국수 맛이 한결 더 업그레이드된다. 다만 소시지는 가격대가 있어서 자주 먹지는 못했던 같다.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과 안면을 트게 되고, 그래서 가끔 우리가 주문한 국수에 계란을 추가하여 끓여 주기도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1분 1초가 아쉬웠던 우리에게는 왕청면은 저렴한 가격에 짧은 시간에 재빨리 충전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던 같다. 물론 돈도 별로 없던 학생 신분에 다른 선택 여지도 없었고, 신속한 음식배달이 없었던 때라 그때는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지금은 편의국수의 이미지가 나트륨과 각종 조미료 덩어리로

자주 먹으면 위장에 안 좋고, 나아가 고혈압 고혈당 고비만을 야기시키고

지어는 우울증이나 뇌심혈관 질환이나 위암 골다공증 등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그런 행위 자체가 배부른 흥타령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영양요소 자체였을 지도 모른다는 헛 슬픈 생각도 해 본다.

참고로 그 당시 그렇게 전투식 번개식 식사를 하고도 대부분 건강했던 같다.


다만 동기 중 한 명만 괴짜였는데 소화제 자체를 사탕처럼 우걱우걱 먹어 주변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그것도 한 번에 10알에서 20알 정도를, 신기할 정도였다.


시간을 쪼개면서 일심전념한 덕분에 우리 동기들이 대부분 자기가 원했던 대학으로 간 걸로 생각난다. 북경에 소재한 대학에만 70여 명 이상 입학, 모교의 영예를 높였고 모교 성립된 이래 전성기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세월이 참 빠른 같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강산이 벌써 세 번 변했다.

가령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한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배고팠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모든 동창들,

그리고 인심 좋았던 편의점 사장님한테도 말이다.


그때는 당연한 걸로 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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