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키는 커지고 나이도 먹으면서 인생경력이 하나 둘씩 쌓여가고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점차 농후해 진다.
하지만 유득유실(有得有失)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잃는 것도 당연히 있다. 기뻐하는 시간보다 슬퍼하는 시간과 순간들이 더 많아지고,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재산은 많아지는 대신 건강은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정보시대를 넘어 AI시대에 매일 듣고 보는 것은 많은데 대신 건더기가 되는 정보는 적다.
이 중에 가장 큰 것이 꿈을 잃는 것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다 꿈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나름대로 오색찬란한 꿈이 있었지만, 성장하는 과정에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흔들리고 깨지고 조각나게 된다. 와중에 불리한 여건에서도 역경을 이겨내고 끝끝내 꿈을 펼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꿈을 잃어 버리군 한다.
꿈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이 상상력이다. 꿈이 먼저 사라진 건지 아니면 상상력이 먼저 사라진 건지는 닭과 계란의 선후와 같은 이야기이다.
늦가을 아침 안개가 아침해살이 비추면서 서서히 걷어지다가 어느 순간에 깔끔하게 자취를 감추듯이
소굽 시절에 그렇게 오색찬연했던 꿈이 상상력과 함께 동반 실종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지나간 꿈이 아쉽고
또한 광야에서 뛰여노는 망아지처럼 자유분방하던 상상력이 사라져간 것이 아쉬워서
주책없는 생각일수도 있지만,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인지 가끔은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전으로 돌아가면 혹은 40년전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그때로 돌아갈수 있다면 꿈처럼 장황한 것은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 머리를 스쳤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중에서 하나라도 실현하기 위해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현실은 타임머신은 없고 꿈은 어렴풋이 생각나고 해서, 그 자취를 찾아서 조각이래도 맞춰보려 한다. 아울러 잃어버린 상상력도 복구해볼꼄 해서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마침 제주 집 부근에 성인미술학원이 있어 문을 노크했다.
나이 60대 되여 보이는 선생님이 친절하게 반겨 주셨다. 가볍게 서로 인사를 하고, 그림을 통해 빈약해진 상상력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을 하니, 도화지 한장과 연필을 손에 쥐여주시면서 위에 쓱 한줄 그으시고, 따라 그려 보라고 한다. 최대한 촘촘히 그리고 한힉에 한줄씩 긋어 보라고 한다.
심호흡을 하고 선생의 말대로 한줄씩 줄을 그어 간다.
조용한 방안에서 연필이 도화지로 지나면서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숨소리 그리고 벽시계가 돌아가는 째각째각 소리와 함께 들려 온다.
마음을 다시 한번 다 잡고 한줄 한줄 그려 간다.
그려 가면서 보니 줄 하나하나가 같은 듯 하면서 다르다.
나무의 나이테를 펼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리면서 은근히 감동되는 게 있다.
인생을 돌다 돌다 원래 자리로 돌아온 같기도 한데, 둘러보니 그것은 또 아닌 같다.
분명 40년 전 어느 하루, 학교에서 연필로 도화지에 열심히 일자선을 그리는 지나간 “내”가 보이는 같기도 하다. 그때도 그렸고 오늘도 그렸는데, 다만 그 사이 세월은 흘렀고 몸과 마음이 늙어지고 어느 사이 얼굴에도 주름살이 하나 둘씩 새겨지기 시작하는 같다.
같은 듯 하면서 들여다 보면 조금씩 다른 줄 하나 하나가
무수히 보낸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나를 말해주는 같기도 하다. 어제보다 더 훌륭한 오늘을 보내기 위해 항상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40년 50년 지나고 보니 숲에 던진 납작한 조약돌이 일으킨 잔잔한 물결이 되어 변한 같은 면서 변하지 않은 듯한, 달라진 같은 면서 또 달라진게 보이지 않은 나를 만들어 간 같다.
직선인듯 아닌 듯, 나인 듯 아닌 듯
과거인 듯 현실인 듯
이래서 그림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