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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맥주엔 辣炒嘎啦(매운바지락 볶음)이지

by 백검

상해에서 일하는 친구가 고향에 놀러 왔다고 연락 왔다. 북경에서 생활할 때에는 자주 만나서 술도 마시고 했는데, 친구가 상해에 있는 통신회사로 옮겨 간 후로는 만난 적이 없고 SNS로 자주 문안만 전하다가 마침 고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마치 다 큰 연어 떼가 만리 바다를 헤엄치고 거친 강물을 거슬러 태어난 물줄기를 찾아가듯, 우리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니깐 고향을 더 찾게 되는 같다. 설사 몸이 못 가더라도 마음이라도 새처럼 날아가서 머물고 싶은 곳이 고향인 연변인 같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회포도 풀꼄 맛있는 연변요리도 먹을 꼄 맥주집을 찾았다.

연변에서 유명한 요리 라면 대다수 연길냉면이나 양꼬치 등을 꼽는 데, 냉면이나 양꼬치 등은 오래전부터 중국전역을 넘어 홍콩이나 도쿄나 뉴욕 등지에 진출되어 있다. 연변 보신탕도 유명하기는 한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나라는 애는 안 낳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면서 소비시장이 많이 위축되었다.

결국 흔해 빠진 냉면이나 양꼬치를 피해 보신탕을 빼고 친구를 만나고 술도 겪들이다 보니 요즘은 친구들과의 모임으로는 맥주집을 가장 많이 찾게 된다.


이번에 정한 장소는 곡궁(谷宫)이다. 원래 이름은 청도맥주 1903인데, 아무래도 빙천맥주 그리고 빙천맥주를 인수한 할빈맥주가 터줏대감인 연변에서 경쟁업체 이름으로 장사하기 힘들었을 까 몇 년 전에 곡궁으로 회사명을 변경하였다. 다만 이름만 변경했을 뿐이지 메뉴와 맥주는 그대로 두고 말이다.


연변 요리에 청도맥주라 이상한 조합이지만, 여기에 매운 바지락 볶음(辣炒嘎啦)이 끼이니 상상외로 조화롭다.

어쩌다 보니 양꼬치엔 청도맥주라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사실 청도맥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매운 바지락 볶음이다.


25년 전에 청도 해변가에서 봉다리 맥주에 바지락볶음을 먹던 때가 생각난다. 가을이었던지 겨울이었던지 좀 가물가물 하지만 시원하다 못해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매콤한 바지락볶음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자주 마셨는데 말이다.

어찌 보면 그때 당시만 해도 해산물요리의 가성비 끝판왕은 바지락볶음이었고, 청도에 있는 여러 브랜드의 맥주 중 가성비 끝판왕이 큰 생맥주통에서 봉지에 담아 무게로 파는 소위 봉다리 맥주(袋装啤酒)였다.


두 가성비의 끝판왕이 만났으니, 청도 현지 음식점들을 거의 통일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마치 제주도에 가서 흑돼지삼겹살 구이를 모르면 간첩인 것처럼 말이다. 해변가의 포장마차에서도, 이창에 있는 코리안타운에서도 이외 고급해산물 요리점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바지락볶음이다.


바지락을 산동방언에서 까라(嘎啦)라고 부른다. 그 출처에 대해서는 그물망으로 잡아 올릴 때 바지락들이 부딪히면서 까라까라 소리가 난다 해서 까라라 불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매운 바지락 볶음이 청도사람들의 밥상에 본격적으로 오르고 더 나아가 청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은 70여 년 전 당시의 상황과 갈라놓을 수 없다.


다사다난했던 1950년대, 중국은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한반도 전쟁과 50년대 말 대약진운동(the Great Leap Forward)으로 농업생산이 비정상적으로 진행된 데다 자연재해까지 겹쳐 식량부족문제가 대대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부모님의 말을 빌면, 그 시기 먹을 양식이 없어서 나물을 먹다 못해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었다고 한다.

청도사람들한테는 다행스러운 것이 바다 옆이고, 지천에 널린 것이 바지락이었다고 한다.

물론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라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도 좋았고 바닷물도 좋았고 당연히 바지락의 품질도 상당히 좋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지에서 옥수수나 먹을 것 하나 잘못 따면 반혁명분자 취급을 당하지만, 주인 없는 바다에서 따는 바지락이라 누구나 관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연히 힘든 나날에 가장 훌륭한 단백질 보충제로 그리고 싶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바지락이 첫째였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그때는 어부뿐만 아니고 공장에서 출근하는 노동자들이나 더 나아가 유치원 다니는 코풀레기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바지락 사냥에 나선 것이다.


청도 해변가에서 바지락을 줍고 있는 남녀노소.


이렇게 잡은 바지락을 말려서 보리고개 식량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매운 바지락은, 한국의 부대찌개처럼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 청도사람들을 먹여 살린 은혜로운 음식이 아니었던가 싶다.


바지락은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고 철분, 비타민, 칼슘, 엽산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하여 한국에서는 된장찌개나 해장국에 넣어 먹는다.

대신 청도에서는 빨간 고추와 파와 마늘 생강 등을 잘라 넣고 땅콩기름에 볶아서 매운 바지락볶음을 만든다.


바지락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파와 마늘 생강과 어울리고 거기에 안성맞춤한 고추의 매운맛이 화룡정점이 되어 혀 안에서 춤을 춘다. 여기에 시원한 청도 생맥주를 큰 입으로 쭉 마시면 맛과 멋이 한데 어우러진 파티가 따로 없다.


청도에 가면 꼭 먹어야 할 그것도 자주 먹게 되는 요리인 바지락볶음. 과거 청도에서 1년 좌우 생활한 덕에 나도 매운 바지락 볶음을 많이 먹게 되었다. 당연히 봉다리 맥주와 함께 말이다.


비록 그 후에도 타지에서도 바지락볶음을 몇 번 먹어 보았지만 바지락이 청도 앞바다 바지락이 아니어서 인지, 아니면 맥주가 청도 맥주가 아니어서 인지 당최 그 맛이 나지 않아서 후에는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근데 연길에서 청도 생맥주에 매운 바지락볶음, 이 천생조합을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

오래된 친구와 함께 하니 다시 옛날 청도 해변가에서 여러 친구들과 봉다리 맥주를 마시던 때로 돌아가는 듯한 착시가 잠시 뇌리를 스쳐 지나서 맥주도 더 마시게 된다.


다만 세월 따라 줄어든 주량, 그리고 나이 따라 작아진 배가 아쉬울 뿐이다.

글치 않으면 바지락볶음도 더 많이 먹고 청도맥주도 더 많이 마셨을 테인데 말이다.

그래서 친구와 지나온 인생얘기도 더 오랫동안 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이제 헤어지면 또 언제 볼지 모르니 아쉽고

그때가 되면 청도맥주에 바지락볶음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역시 아쉽다.

그런 줄을 알았더면 그날 시간을 멈춰두고 더 마셨어야 했는데 생각하니 더 아쉬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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