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자가 격리 중
현지 시각으로 3월 17일 화요일 정오부터 covid-19의 전염을 막기 위해 15일간 프랑스 전국에 외출 제한 (lockdown)이 시작되었다. 정부가 제공한 아래 양식에 외출 목적을 체크하고 소지하여야만 집 밖으로 외출이 가능하며 길에 포진된 경찰, 군인에 의해 불시 검사 시에 해당 양식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35-135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외출이 허용되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1. 출퇴근 -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회사들은 재택근무 중
2. 생필품 구매 - 슈퍼와 약국 정도만 해당된다. 이미 지난 주말부터 이외의 레스토랑, 바, 기타 가게들은 영업이 금지되었다.
3. 건강상의 이유 - 병원, 약국 등 방문
4. 노약자 또는 어린이 돌봄
5. 간단한 산책과 애완동물 산책 - 동행 없이 홀로,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 근처에서만 가능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에서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이동까지 제한하고 전 국민이 자가 격리에 들어간 이 상황은 실로 유럽 현대사에 남을 엄청난 사건이다. 전쟁 상황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시민들의 생활을 자제한 적이 없는 프랑스인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월요일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전쟁'중에 있다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하여 되풀이하였다.
(프랑스 역사상으로는 전쟁이고.. 내 개인 인생사에 있어서는 왜 하필 내가 여기 와서 혼자살이 하는 동안 이런 일들이 터지나.. 싶다. 나는 프랑스에 도착한 작년 12월엔 대형 파업이 날 맞이했고 이제는 lock down이구나 허허)
물론 현재 유럽에서 covid-19 전염 상황이 심각하고 그 속도가 매우 빨라 위험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배경은 이해가 간다. 18일 오후 11시 기준 아래 자료를 보면 유럽에서의 감염은 아시아보다 훨씬 늦게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의 감염자 수가 한국을 추월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은 병원이 부족해 교회들마다 시신이 가득 찼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포인트는 바로 이 모든 pandemic과 그에 맞서는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이는 프랑스 국민들의 위기의식과 태도이다.
사실 프랑스 정부가 처음부터 무작정 외출 제한이라는 강수를 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휴교령으로 시작해 -> 음식점, bar 등 휴업령 (토요일 오후 발표) -> 외출 금지 (월요일 오후 발표)의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휴업령이 적용된 일요일 오후, 집에만 있기 답답했던 나는 잠시 센 강 주변으로 짧은 산책을 나갔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글쎄 피크닉, 피크닉 이런 피크닉이 없을 정도로 강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서 햇볕 쬐며 가족, 친구와 수다를 나누고.. 이렇게 평화로운 주말이 다시없을 정도로 모두가 날씨 좋은 한가로운 일요일 즐기고 있는 광경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 마스크는 당연히 아무도 안 쓴다.)
어젯밤의 휴업령을 듣고 긴장한 것은 나뿐인가? 아니, 저들은 휴업령 소식을 듣기는 한 것인가? 지금 전 세계에 백신도 없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고 바로 옆 나라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몇백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준비와 대처도 없이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일상을 즐기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다행히 '위기의식은 개나 줘버려' 식 프랑스 국민들의 태도에 충격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주말 동안 아랑곳하지 않고 피크닉과 축제를 즐기는 국민들을 본 정부가 화가 났다. 대통령은 급기야 국민을 '바보'라고 까지 칭했다. (동의한다.) 그리고 16일 월요일 오후, 대통령이 2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경 폐쇄, 외출 제한, 2차 지방 선거 연기를 발표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31632
https://news.v.daum.net/v/20200316172609399
만약 프랑스 국민들이 한국인들 또는 아시아만큼의 위기의식을 가지고 단합적인 사고방식을 했더라면 프랑스는 외출금지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정부도 중국, 이탈리아 선례를 보고도 더 미리 초기대응하지 않은 점, 그리고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와중에도 1차 지방 선거를 강행한 점 등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남지만, 나는 정말이지 프랑스인들의 이 안이한 사고방식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국가 LOCKDOWN 지경에 까지 이른 것에는 국민들의 태도가 결정적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경험상 서유럽과 아시아 (특히 한중일)의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는 항상 조금씩 달라 왔다. 2016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사건 발생 시 당시 나는 한국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사장님(프랑스인)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니스 테러가 그 당시 가장 큰 뉴스거리였기 때문에 프랑스 현지 상황은 어떻냐, 사람들이 패닉 하고 있냐 등의 질문을 했는데 생각보다도 참 무덤덤하고 calm 한 답변이 돌아왔다. '패닉 하지 않고 모두 평소대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비참하고 슬픈 일이지만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보다 대중은 평화롭다. 이러한 큰 테러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자동차 사고를 당할 확률보다 훨씬 낮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 않느냐'. 흐익.. 그래 느이들 정말 KEEP CALM AND CARRY ON이다...
(사실 뭐 바꿔 생각해보면 북한 도발 시 CNN, BBC는 곧 전쟁 날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막상 북한 코앞에 붙어사는 서울 사람들은 별 신경도 안 쓰지 않나? 그것과 비슷한 것이려니 생각해 본다..)
아무튼 원체 집단 공포 또는 집단 안달복달(?) 함이 아시아보다 적은 유럽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는 그런 태도를 더 지향해야 하는 것이 맞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인간에서 인간으로 쉽게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지 않은가!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산다' 식의 개인주의적, 이기적 사고방식을 잠시 접어두고 나도 모르게 나 때문에 감염될 수 있는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해 한번 즈음은 collectivism 적인 생각과 액션을 취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끝까지 이런 의식 없이 자유를 외치며 개인행동하다가 국경 폐쇄와 lock down 이라는 상황에 까지 오게 된 것이다.. 흑흑.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치즈 종류만 300가지를 먹는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냐며 힘듦을 토로했다던데.. 샤를 드골 아저씨.. I FEEL FOR YOU...
어찌 되었든 사실상 나라 올스탑이라는 초강수를 둔 정부 덕에 지금은 모두가 며칠째 집에 조용히 들어가 앉아 있다. 하루빨리 프랑스와 유럽에서도 상황이 안정되어 많은 희생자 없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덧. 지금껏 마스크 죽어도 안 쓰고, 정부도 아픈 사람만 쓰라고 권고하며 마스크 쓴 아시아인들 조롱 또는 위협하던 이들이 lock down 정책 시작되자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5-60대 이상은 거의 모두 쓰고 있고 젊은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 이제 뭔가 좀 무섭다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