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지하철에서 사진 찍어도 되나요?
러시아 지하철에서 사진을 찍는 게 불법일까? 지하철이 위치한 도시의 행정법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상트페테르부르크라면 'Об административных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 в Санкт-Петербурге’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지하철 기관사의 시야 확보 등 안전상의 이유로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은 촬영만 가능한 경우도 있고, ‘전문가용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비상업적 목적의 사진촬영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실제로 수도인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꽤나 화려해서 지하철만 촬영한 DVD도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지난 글에서 언급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마야코프스키 역 입구 쪽에도 CCTV와 함께 촬영금지 표시가 되어 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공식 홈페이지(http://www.metro.spb.ru) 이용규정을 참조한다면 서면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플래시를 이용하지 않은 촬영은 허용됨을 알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이용규정을 좀더 살펴보면, 지하철 역내에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는 것,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금지다. 지하철 차량 손상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겠지만, 2m 이상의 대형화물을 지참하는 것도 안된다. 개, 강아지, 새 등의 애완동물의 경우 삼면의 합이 120cm 이하인 케이지(새의 경우엔 새장) 안에 넣어 케이지 입구를 잠근 경우에 반입이 가능하다. 단,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경우 안내견이 목줄과 입마개, 특수한 식별표시를 하고 있고, 시각장애인과 안내견 모두가 지하철 이용교육을 이수한 경우에 지하철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러시아 지하철은 방공호를 겸하도록 지어져 그 깊이가 꽤 깊은 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가장 깊숙히 지어진 역의 깊이가 100미터가 넘고, 5개 노선 60개가 넘는 지하철 역 중 대부분이 20-90미터 정도의 깊이다.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는 꽤 빠른 편으로, 나처럼 롤러코스터도 무서워서 못 타는 사람은 스릴감을 느낄 정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곳곳엔 광고판이 붙어 있고, 에스컬레이터 아래에는 안전요원이(주로 중년여인) 상주하고 있으면서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은 어린이나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준다.
가끔 러시아 지하철을 타면 그 잠깐의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참을 수가 없었는지 젊은 연인들 중에, 특히 남자가 앞칸에 서서 뒤돌아 여자친구를 쳐다본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위험해 보인다. 당시에는 저러다 균형을 잃고 굴러떨어지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다친 사람이 있나 러시아 인터넷 포털 얀덱스(Yandex.ru)를 검색해 보니 그런 예는 찾기 힘들었고, 대신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신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키스해 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하며 자기 경험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댓글만 줄줄이 달린 것을 발견했다. 에스컬레이터 뿐 아니라 지하철 차량에서 키스하는 사람들도 골치였는지, 2003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지하철, 상점, 영화관, 길거리등 공공장소에서의 키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해서 다른 지방정부도 그 선례를 따르게 될지 고민하는 등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긴, 런던, 프랑스, 비엔나 같은 유럽의 다른 도시나 나라들도 지하철에선 키스를 금지하는 법이 있다니 러시아의 연인들만 유별난 건 아닌 것 같다.
모스크바의 지하철 마크는 붉은 색의 남성적인 직선인 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 마크는 세련된 아가씨처럼 파란 색의 갈매기 날개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어 두 도시의 상반된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또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모스크바 지하철의 정기권은 마그네틱이 달린 흰 마분지 종이였는데, 지금은 일회권 티켓까지 플라스틱 카드로 교체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쓰는 지하철 토큰인 '줴톤'(Жетон)은 매년 해가 바뀌면 2, 3루블 정도씩 오르는 바람에 연말이면 사재기를 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는데, 내가 러시아에 처음 갔던 해인 2003년에 7루블로 시작해서 2007년에 14루블, 2013년 28루블, 2017년엔 45루블까지 올라 조만간 모스크바처럼 50루블을 돌파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역 중에서는 2011년에 완공된 보라색 선의 아드미랄쩨이스카야(Адмиралтейская) 역이 표트르 대제 등을 모티프로 한 모자이크화를 담고 있어 볼만 하다.
* 표지 : 모스크바 벨로루스까야 역의 지하철 천장 모자이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