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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로 쓴 석사 논문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힘들었지

by Victoria

나의 대학원 석사졸업논문 주제는 외국인직접투자(FDI)에 대한 것으로, 2000년대 말 당시 러시아 내에서 외국계 기업들의 제조업 진출분야가 소비재(FMCG)로부터 가전제품, 자동차 등으로 고도화되는 추세에 대한 내용이었다.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고는 총 3장으로 구성되었고, 자주 쓰인 약자와 참고문헌, 부록을 포함하여 A4 90매 가량의 분량이었다. 세계의 FDI 동향과 국가별 경제지표 등 통계자료 비교에는 러시아 통계청(www.gks.ru) 데이터들과 함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와 유럽개발은행(EBRD) 등의 보고서와 대기업들의 연차보고서(Annual Report)를 많이 인용했다. 러시아 동기들은 전세계 유가변동예측같은 좀더 전문적인 주제를 선택했던 것 같다. 교과과정에 따라 1학년 때와 2학년 때 러시아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에서 실습을 했던 것도 논문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지도교수님은 국제경제관계학과의 학과장님이셨는데, 앞서 언급한 클래식을 좋아하는 K 외에 다른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비슷한 주제를 추천하신 것 같았다. 베테랑 학과장님 덕에 논문의 방향 설정과 목차 선정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도교수님은 논문의 전체적인 방향 결정 및 두세 차례의 중간점검 외에도 ‘Аннотация'라고 불리는 한 페이지 정도의 논문 내용 요약과 ’Отзыв’라고 불리는 논문에 대한 평가도 작성해 주신다. 지도교수님 외에도 다른 교수님 한 분이 ’Рецензия’라고 하는 리뷰를 통해 논문의 적절성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논문 지도교수님 외에 석사과정 학생들을 담당하던 선생님이 따로 계셨는데, 검은 머리에 아주 친근한 동양적인 외모였다. 한국어는 못하셨지만 부인도 고려인이라고 했다. 석사과정 담당 선생님은 논문을 쓰는 방법론에 대해 강의를 하셨는데 내가 졸업한 대학에선 학부 때 졸업논문이 필수가 아니었던 고로 논문 작성요령을 잘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매우 유용한 수업이었다.


논문의 주제가 정해지고 몇 차례 학과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논문의 목차를 정하고 그때까지 쓴 내용을 보여드리는 과정이 있었다. 첫 면담에서 내가 준비해 간 목차를 학과장님이 전면적으로 수정해 주시는 바람에 내가 시작부터 논문 방향을 잘못 결정한 건가 약간의 멘탈붕괴를 겪기는 했지만, 논문을 쓰다 보니 역시 다년간 논문 지도 경험이 있으신 학과장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쉬운 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석사과정의 논문이야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이론에 적합한 예시를 드는 것이라 러시아어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이 거의 유일하고도 지대한 애로사항이었다. 나는 도표와 통계치 등으로 최대한 분량을 채우면서 텍스트 부분은 러시아어를 거의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는 K의 감수를 받아 작성했다. 논문 제본은 보스타니아 역 근처에 있는 큰 인쇄소를 이용했고, 하드커버로 제본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한 스프링 노트 제본을 했다. 정부초청장학생 프로그램을 지원해 준 국립국제교육진흥원에도 절차에 따라 한 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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