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 좋은 시기는?
러시아 최고의 극장은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 극장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두번째로 좋은 극장, 혹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최고의 극장이라면 누구나 마린스키 극장을 꼽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마린스키 극단은 1783년 만들어진 예카쩨리나 여제의 러시아 황실극장을 모태로 하지만, 농노제 폐지로 유명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부인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알렉산드르 2세는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세력의 폭탄테러로 인해 암살당했는데, 그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화려한 모자이크화로 유명한 '피의 사원'이 세워졌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블라디보스톡에도 마린스키 분관이 생겨 연해주 지역에서도 공연을 즐길 기회가 늘어났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내에 있는 '마린스키'만 해도 3개나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전적인 외양의 건물에 옥색과 흰색이 칠해진 마린스키 구관, 최근 지어진 마린스키 신관(마린스키 2), 그리고 이 둘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콘서트 홀이다. 세 곳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지만 공연 시작 전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마린스키 콘서트홀은 무대 사방으로 좌석이 놓인 만큼, 여기서 열리는 공연들은 오페라라도 콘서트 형식(역에 따른 의상이나 무대미술, 연기가 없는)을 취한다. 공연장 내부는 바이올린 몸체를 본따 만들었다는데, 최신 음향기술을 적용해서 소리가 잘 울려퍼지는 장점이 있지만, 좌석 열간 앞뒤 간격이 짧고 열 사이 통로도 많지 않아 입장할 때나 쉬는 시간이 끝날 때 좌석 중간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불편이 있다.
전설의 성악가 샬라핀,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최고의 발레리노들(바슬라브 니진스키,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등이 마린스키 극장을 빛냈다. 앞서 언급한 발레리노들 중 안무가로도 활동한 니진스키는 말년에 정신질환을 앓았고 누레예프는 파리로 망명한 후 에이즈로 사망했으며, 바르시니코프는 미국으로 망명해 영화 '백야'에 출연하는 등 각기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위대한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조지 발란신은 미국으로 가서 미국 발레역사의 초석이 되었다. 발레 루스, 키로프 발레단이라고 하면 다 마린스키의 전신으로 보면 된다.
마린스키 극장과 관련된 비교적 최근의 주요인물로는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극장 총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한국이 낳은 마린스키 최초의 동양인 발레리노 김기민, 최근 은퇴한 발레리나 울리아나 로빠뜨키나 등이 있다.
마린스키 극장은 mariinsky.cn이라는 중국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mariinsky.us라는 미국재단 사이트는 미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로 운영된다. 마린스키 극장 홈페이지에는 마린스키 TV와 라디오도 링크되어 있는데, 한국인 관객의 수가 늘어 언젠가 마린스키 극장 한국어 페이지도 운영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개인적인 바람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공연을 보는게 주목적이라면 12월-1월의 겨울철도 괜찮다. 하지만 특별히 설원을 즐기거나 실내에서만(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돌아다니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가장 좋은 여행시기는 5월-9월이다. 아무래도 좀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금 더 길어진 해 덕분에 이곳저곳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름철 성수기에는 호텔값도 좀 올라간다. 또한 5월 혹은 6월 중 3일 정도는 상트국제경제포럼(St. Petersburg International Economic Forum)이 열려 해당 기간에는 숙박비가 2-3배로 뛴다. 2018년 상트국제경제포럼의 개최시기는 5월 24일-26일이다. 또한 2018년엔 월드컵 일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의할 점은, 6월에 백야축제를 하고 나면 7월-8월에는 마린스키 극단이 해외 공연이나 지방공연을 간다는 점이다. 세계 정상급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지식이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