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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의 직장생활 : 즐거운 나의 집(1)

자취생의 로망과 바다가 보이던 첫 번째 집

by Victoria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학교 기숙사를 떠나 자취를 하게 된 것은 대학원 2학년 2학기에 실습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때도 독일친구 J가 내 룸메이트였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그리폰 다리 근처에 있는 학교 기숙사에서 바실리 섬에 있던 사무실까지 출근하려면 학생들로는 꽤 이른 시간인 일곱 시 즈음에 일어나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교적인 대학생 답게 밤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늦잠을 자는 편인 J와는 생활리듬이 달라져 서로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J는 아침에 내가 아침밥을 준비하는 그릇소리에 깨고, 나는 밤에 J가 듣는 음악소리나 J를 찾는 기숙사 친구들의 소리에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고. 이러다간 좋은 친구 사이가 원수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통근거리도 줄일 겸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당시 직장 근처인 바실리 섬 안에 집을 구했다. 요즘엔 러시아에도 ‘gdeetotdom.ru’처럼 인터넷으로 지하철 노선이나 지도에서 찍어서 사진, 층수, 면적, 월세 등 자세한 매물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에이전트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월세로 집을 구하려면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편인데, 월세와 월세의 한 달치에 해당하는 보증금, 부동산 에이전트 수수료(복비)를 준비해야 한다. 복비는 모스크바에서는 월세의 절반 정도라고 하는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월세만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거래가 많은 법인고객의 경우 에이전시에 따라 10%~20% 정도 할인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고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리비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ЖКУ’(жилищно-коммунальные услуги)에는 수도세, 전기세, 난방비 등이 포함되는데, 보통 세입자가 내도록 되어 있다. 인터넷의 경우 세입자가 자기 명의로 직접 계약을 맺고 요금을 내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주인 명의로 된 계약이 있다면 집전화 이용료와 함께 집주인에게 지불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계약기간은 11개월 정도로, 통상 계약종료희망시점의 한달 전까지 종료의향을 통보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계약서를 잘 읽어 보는 것이 좋다. 경기가 좋을 때는 매년 임차료가 올랐고, 세입자가 바뀌게 되면 에이전트들은 수수료를 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집주인들에게 시세를 알려주며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내 첫번째 집은 바실리섬의 여객선 항구에서 멀지 않은 쁘리발티스카야 호텔 옆에 있었다. 그곳은 침실 한 칸짜리 집이었지만 창 밖으론 바다가 보이고, 리모델링을 해서 입구에 그리스풍의 흰색 아치가 있어 빈약하나마 자취인의 로망을 충족해 주는 집이었다. 집 주인은 러시아와 유럽의 이중국적자로 러시아어 개인교습과 주택임대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이사오기 전엔 중국 레스토랑 매니저가 살았다는 집은, 바로 옆에 스포츠센터도 있고 버스정류장도 가까워서 편리했다. 그 집에서 한 1년 정도는 아무 이상이 없이 잘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주방 탁자에 있던 밀폐용기 사이로 쥐 한 마리가 머리를 들이밀기 전엔.


* 표지사진 : 러시아에서 살던 집의 소비에트 시절 로고가 달린 조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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