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와의 사투, 백기 투항하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작은 사고를 방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산업재해에 대한 법칙인데, 꼭 이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쥐가 나타나기 전에도 작은 조짐들은 있었다. 방에 느닷없이 작은 벌레가 나타난다거나, 한밤 중에 화장실 등이 갑자기 켜진다거나 하는. 그렇지만 내 눈으로 직접 쥐를 보니 소름이 돋았다. 주인에게 말했더니 퇴근 시간에 가까운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 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하철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던 주인은 흰색 플라스틱 도시락 같이 생긴 박스를 하나 안겨주었다. 열어 보니 한가운데 끈끈이가 달린 쥐덫이었다. 집주인 말대로 부엌 싱크대 밑 외진 곳에 놓아 보았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자구책에 나설 때였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Хозяйственные товары'(하쟈이스트벤늬이 따바릐)라고 쓰인 가게에서 화장실 배관관련 부품이라던가 청소용구 같은 집에서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데, 이번엔 거기서 색색깔의 둥그런 시리얼 같은 쥐약을 샀다. 집 안 어디에선가 갑자기 죽은 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산 쥐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났다. 어느 날 밤에는 부엌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온 쥐가 망사천으로 마스킹이 된 난방장치(러시아는 아코디언처럼 생긴 철제파이프 속으로 온수가 순환하며 방을 덥히는 중앙난방식 집이 많다) 뒤로 숨어 버려서 망사천 앞에 주인이 줬던 쥐덫을 놓고 한 손에는 빗자루 막대를 쥔 채 새벽까지 쥐와 대치를 벌이기도 했다.
쥐를 찾아 집 안 이 곳 저 곳을 뒤적이다 보니 부엌에 있던 전기렌지 겸용 오븐의 측면에 끼인 어마어마한 기름때를 목격할 수 있었다. 쓰지 않던 오븐의 아래칸에는 내가 산 것과 같은 빨강 파랑 색색깔의 쥐약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이 집에는 전에도 쥐가 살았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시의 위생과에 연락해 연막탄이라도 피워 달라고 하거나 하자가 있는 집을 임차했다고 집주인이나 부동산에 책임을 물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혼자 직장을 다니며 고군분투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고 평생 접해 본 적이 없으니 쥐 한 마리 잡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지도 몰랐었다. 그나마 어느 학교 기숙사 쓰레기장 주변에 출몰한다는 팔뚝만한 들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의도치 않은 쥐와의 동거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여러 날이 지나갔다. 어느 날 접이식 우산을 폈는데 검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작은 쥐 시체가 바닥으로 풀썩 떨어졌다.
이제 끝이다. 그 쥐가 나와 벽장 앞에서 대치했던 그 쥐인지도 모르겠고, 집에 나도 모르는 쥐구멍이 있어 끊임없이 쥐가 들어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쥐가 워낙 작아서 애완용 쥐가 환풍구를 통해 잘못 들어온 것 아니겠냐는 주인의 궁색한 의견도 있었지만 이사를 가야겠다는 나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마침 계약기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처음 집을 구해 준 부동산에게 문의를 했지만 커미션이 그다지 크지 않은 소형매물이라 그런지 그다지 적극적으로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아 급하게 다른 부동산을 통해 이왕 옮기는 김에 사무실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의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