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9년의 내 직장생활에 대해 반추해 보자면 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하겠다.
“평범함”
서로 다른 인격체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관계’ 중심의 회사라는 곳에서 나는 평범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지켜져 왔었던 암묵적인 룰과 변하지 않는 프로세스, 적당한 동료들과의 관계, 모든 것은 그냥 물 흐르듯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그리고 아무런 외적 제재 없이 흘러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기조는 나를 그저 그런 ‘평범한 직원’으로 꾸준히 포지셔닝시켰다. 스스로를 틀 안에 가뒀다. 나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고, 두루뭉술 적당히만 알고 넘어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기획자의 기본 자질이라고..
그렇게 위험한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적당히 잘 흘러가는 내 옆에 누군가가 도랑을 파기 시작하면 나는 흔들린다. 내가 구축해왔던 생각들과 프레임들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분명 나름대로의 조사를 했고 인사이트를 뽑아냈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훌륭한 안(案)은 없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일을 진행했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글쎄...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왜일까?
그렇다. 바로 “나름대로” 때문이었다. 평범함으로 점철된 그 기획, 보고
“한눈에 들어오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기획된 것인가?” 이런 생각 따위는 내게 없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주인공인.. 상대방을 위한 제안이 아니었던 것.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뭐가 가려운지,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지 대해 파악도 정의도 없이 그냥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내 중심적인 제안을 했다. 상대방과 나의 간극을 생략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의견이 안 맞고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을 터. 초점이 처음부터 어긋나니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하는 행위가 구구절절 무의미 해졌겠다. 반성이 된다.
내 아이디어와 제안을 사는 것은 상대방이다. 보다 높은 위치에서 압도적인 논리로 상대방을 홀릴 수 없다면 내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NEEDS다. 상대방의 NEEDS를 파악하는 행위, 기획의 초기 단계부터 나는 어긋나 있었다.
‘①WHY - ②WHAT - ③HOW - ④IF’라는 기획의 가장 기초적인 프레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용어만 다르지 ‘제안 배경 및 목적 - 제안 내용 - 수행방안 - 기대효과’ 프레임은 제안서를 써 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소위 일 잘하는 기획자는 제안 배경과 목적을 철저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도출된 인사이트는 당연히 상대방의 마음에 들 것이고.
역지사지, 사자성어 중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것. 내가 피보고자의 입장이라면,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고객사의 입장이라면 이게 최선일까 하는 건강한 의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꾸려는 의지와 노력,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한 제안
끊임없는 질문 그리고 고민
이게 최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