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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Y Jun 01. 2018

엉금엉금 아빠 통닭, 날아오는 나의 치킨!

닭 한 마리 변천사-야밤에도 밖에서 먹을 수 있는, 바야흐로 치킨의 계절




너는 어쩜 그렇게 맛있니? 매일 먹고 싶게!



닭 한 마리 변천사, 엉금엉금 아빠 통닭, 날아오는 나의 치킨

-통닭은 곧 월급날이라는 공식은 꽤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렀다  

   

당신이 떠올리는 닭 한 마리는 무엇인가?

당신과 당신의 자녀가 만나는 닭은 각각 통닭과 치킨으로, 그 본질은 같으나 생김새는 약간 다르다. 통째로 튀긴 것과 조각내 튀긴 것의 그 차이는 20여년을 오고가며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했다. 

목부터 꼬리까지 한몸이었던 그것은, 윙과 다리, 가슴살 등으로 분리돼 가벼워진 덕인지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월급봉투 받는 당신의 닭 한 마리는 통닭

얇은 튀김옷을 입고 다리를 꼰 온기 가득한 통닭 한 마리는 월급봉투가 있던 시절, 한 달에 한 번 월급과 함께 퇴근길을 재촉하게 하는 통과의례 같은 의식이었다. 후후, 빳빳한 봉투를 불어 동전까지 탈탈 털어 손으로 볼펜 위 숫자와 맞추는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은 안쪽 주머니 품속에서 여남은 천 원짜리가 바지주머니로 들어갔다. 

골목 어귀 단골집에 들르면 무뚝뚝한 당신도 어김없이 한마디를 건넸다. 

“통닭 한 마리 포장이요.”

김이 나는 통닭 한 마리를 능숙히 포장하고 조미소금까지 꼼꼼히 챙겨 한 번 더 비닐에 담아 주면 그걸 가슴에 품고 집에 왔다. 품에 달려드는 아이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잠시 바닥에 내려진 통닭은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상 가운데 올려 봉투를 벗겨 결을 따라 쭉쭉 찢어 놓으면 고소한 기름냄새가 온 방안을 채웠다. 겉이 바삭한 껍질 안쪽에 살을 발라 아이 입에 넣어주는 것은, 그 아이가 자라 세련된 발음의 치킨(Chicken)을 시킬 나이가 될 때쯤이면 월급날이 아니더라도 그 좋아하는 닭을 실컷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으리라.     

◆인어공주 고객님, 목소리 필요 없으니 그냥 누르기만 하세요!

달을 넘길지라도, 평일 5개, 주말 2개 총 7개 한 세트로 묶인 일주일은 반복된다. 그리고 다시 평일을 앞둔 일요일 밤은 반드시 돌아오는데, 이 공허함을 달래는 데 종종 ‘닭 한 마리’가 이용된다. 

리모컨 채널 UP, DOWN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배달 앱을 클릭해 주문을 하고, 배달비 3000원을 추가하면 현관을 지나 문지방을 넘어 식탁 위에 ‘여전히 훈김이 훅 밀려오는’ 한 상이 차려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달주문에 연결고리는 전화였다. 

“여기 000번지인데요, 치킨 한 마리만 배달해주세요.”

‘여보세요’로 시작해 수화기 너머로 또박또박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배달의 매개체는 스마트폰이다. 음성통화를 인어공주 고객을 위한 무음 주문이 가능하도록 주소와 연락처를 글로 적어 넣으면 된다. 부지런한 손가락이 주문부터 결제, 배달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배달료 신설…… ‘월급날 아버지’가 해줬던 배달을 부탁해!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지난해 6,470원보다 16.4% 올랐다. 이는 예년과는 달리 이례적인 두 자릿수 인상으로, 급격한 인상률로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가게들의 영업행태 변화로 우리의 소비생활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24시간 영업을 하던 가게들은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며 영업시간을 줄였다. 아르바이트생 수를 줄이고, 주인이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적응해갔다. 

당연히 창업 1순위로 꼽히는 치킨집도 메뉴판이 바뀌었다. 

‘치킨 2만원 시대’에서도 감칠맛과 빠른 배달로 야식 메뉴 인기순위서 좀처럼 자리를 양보하지 않던 굳건한 메뉴 치킨이 부담스러워졌다. 

‘콜라 별도’, ‘무 별도’, ‘배달료 별도’로 무장한 치킨은 이제 만 원 짜리 두 장으로 맛볼 수 없는 음식이 됐다.     

◆‘배달료 별도-3000원’

그래도 3000원을 지불하면 ‘월급날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됐다. 

고단한 직장생활이 녹아든 월급을 품에 안고도 술 한 잔 편히 기울이지 못했던 그날, 그 시절 월급봉투는 그 품을 닭 한 마리와 나눠썼다. 케이스는커녕 얇은 비닐 한 겹이 다였던 포장된 닭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식지 않은 것은 현관에 뛰어나와 당신을 맞아주는 아이들을 위한 아버지의 ‘가슴품 씀씀이’가 그 이유였다. 

이제 그 가슴품 씀씀이는 오토바이와 배달비 3000원으로 치환됐다. 램프의 지니처럼 스마트폰을 문지르면 따뜻한 온기가 밴 닭 한 마리를 현관문 한 번 열어주는 수고로움으로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그것은 과소비와 낭비에 기로에 서 있다. 

그래도 500ml 맥주 한 캔을 추가하고, 배달비 3000원을 한 번 더 추가해 월급날 아버지를 빌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치킨을 먹는다.    


◆계좌이체로 월급 받는 당신 아이의 치킨

가장 좋아하는 닭다리를 집어 들고 땅콩이 뿌려진 양념이 찍어 입속에 넣으면 그게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티슈로 닦아내고 목뼈, 날개, 가슴살 여남은 개를 뚝딱 다시 포장해 냉장고에 넣고 나면 이제 월요일을 맞이할 의식의 마무리다.     

여전히 아버지도 가끔 치킨을 산다. 

군대에 간 아들이 좋아하는 걸그룹의 한정판 브로마이드를 대신 받아주기 위해 전화를 건다. 치킨을 먹고 싶다는 딸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인터넷을 켜 독립한 딸의 주소를 천천히 빈 칸에 채워 넣는다. 

다만, 가슴에 품을 월급봉투가 없고, 가슴에 품어야 온기를 유지하는 통닭이 없다.     

오늘, 한 달에 한 번 월급봉투와 함께 가족을 위한 통닭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왔던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월급통장의 ‘찾으신 금액’ 한 줄과 맞바꾼 치킨 한 마리의 힘으로 출근을 한다.    



위 글은 비아이매거진에 실린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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