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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승 May 18. 2023

읽고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①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내 여행의 목적은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휴식만이 목적인데, 작가님은 역시 작가님인 걸까. 여행을 참 다각도로 생각하고 느끼셨네. 요즘 유튜버들 말로 '유튭각'. 글을 쓰시는 분이시니 모든 것이 글감이 되셨겠지. 원래 독후감을 쓰려던 계획은 없었는데, 나의 길고 짧은 여행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떠올랐던 작은 생각조각들을 하나의 글로 엮어보려고 한다.




long trip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것(외면적 목표)과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것(내면적 목표), 이렇게 나눌 수 있다. -p.21

내 여행도 그랬다. 내 나이 25세,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2주짜리 국제워크캠프에 참가한 것이었다. 참으로 멋진 나의 꿈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 순간이었다. 목적지가 세르비아라는 나라여서 심사숙고가 필요했지만, 결국은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가는 김에 그 앞으로 1주는 런던에서 연수를 하고 있던 친구 집 방문을, 뒤로 1주는 당시 함께 살던 룸메이트와 파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유여행까지 계획했으니 계획성 한 번 철저하여라. 나의 호기로웠던 한 달여의 모험담은 내 딸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었는데,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여행이었다. 지금 하라고 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25살의 나와는 많이 다른 이유로 망설일 것 같다.


무모했던 여행은 하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마쳤고, 돌아왔던 그때를 기억한다. 막내딸로 자라온 긴 시간들. 스무 살이 넘어 혼자 자취를 몇 년이나 했는데도 아직도 나를 아가처럼 대하는 부모님이 싫었다. 특히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 그때 아빠랑 했던 통화에서 이제 내가 다 큰 것 같다고 그러셨다. 드디어 내가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성인)로 인정을 받은 이었. 야호! 음악 커리어를 위한 하나의 로드(외면적 목표)로 워크캠프를 떠난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부모님께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내면적 목표)까지 이룬 것이다.



longer tirp

'그림자'라는 것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가 -p.126

내가 이해한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여행), 자신의 소속(그림자)을 잃으니, 방랑자가 되는데,

인간은 결국 여행을 마치고 자신이 소속된 장소(책임/의무가 있는 곳)로 돌아온다.라는 것이다.

맞다. 외국에 살던 3년 반의 시간 동안, 나는 그 나라의 멤버십이 없다 보니(시티즌이 아니다 보니), 외국에 살아본 누구나 공감할만한 서러움, 혹은 오피셜리 불가한 것들 때문에 오는 한계를 겪그런 신세였다. 꼭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결국 내 가족, 정확히는 부모님이 계신 곳,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남편과 나)는 장남이기도 하고, 외동 같은 막내딸이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한 도시에 오래 살면서,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싫다. 나는 'E'성향을 가지고 있어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 오랜 시간 즐기며 노는데서 에너지를 받는다. 정말이지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알고보니, 나 'OOO' 본연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거였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가족으로 인해 엮이게 된 인연들에게는 나 그대로를 다 보여줄 수가 없고 사회적 가면을 쓰고 만나야 하니 싫었던 것이다.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모범생 기질이 모든 부담을 내가 떠안고 스스로 처리하려는 몹쓸 독립심과 만나 내가 정한 틀 안에 갇혀버리게 만든 것이다. 그 때문에 자꾸만 아는 사람을 늘리고 싶지 않았고, 본의 아니게 아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면 나도 모르게 불안증세가 스멀스멀 올라오며 내가 만든 이 틀 안에서 아예 문을 열고 나와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싶어지는 거였다. 오랜 시간 적응해 살아온 여기를 떠나면 또 불편할게 분명한데, 어쩌면 나를 누르는 부담감을 핸들하려 애쓰는 것보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쪽이 더 편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 자유로운 영혼에게는. 

해방감. 그것이 나도 몰랐던 내 『여행의 이유』였나 보다.



the longest trip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p.19

바로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목적을 가지고 계획하고 실행하더라도, 어디 결과가 늘 내가 계획한 대로만 되던가?

어쩌면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여행일 수도.


어차피 알 수 없다는 것. 많은 것들이 그저 우연으로 결정된다는 것.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 -p.108
예측을 통해 결과를 통제하고 싶기도 했고, -p.109

(1) 세세히 계획을 하는 건, 이미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이끌려는. 즉, 결과를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2) 큰 틀만 잡아놓고, 나머지 세세한 것은 모두 자유에 맡긴 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이후에 지켜보겠다. 그리고 후에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겠다.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두 가지 면이 있는데, 요즘 유행하는 mbti에 'P'와 'J'의 구분이 이와 맞아떨어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상 그 자체가 루틴인 고3에게는 완벽하게 계획 그대로 실천 가능한 환경이었기에, 나는 고3 때 완벽한 J로 살았다. 이후 대학 때도 언젠가 까지는 나의 계획들이 통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돌발상황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의 계획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서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가는 P로 완벽하게 변모했다. 결과를 통제하려는 생각은 아예 없고, 그저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돌발상황에 대응하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주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잘한다. 이러한 나의 성향은 육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길고 짧은 여행들을 되돌아보는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자꾸만 떠나고 싶을까,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싶을까.'라는 게 의문이었는데, 그 미스터리가 풀린 게 가장 큰 수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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