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사람이 없어서”

“사랑이 없어서”

by 승리
“하, 여기 나 말고 사람 X끼가 없는 것 같아”


언제가 한번 즈음 마음속으로 생각해 봤을 법한 강력한 한 문장일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사람]이 아니었던 찰나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제목은 사실 내가 먼저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여느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근황토크에서 이미 사용된 제목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람]이라는 직함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하고 엄격한 기준을 갖고 삶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초고속 산업화의 아레나 대한민국에서는 물질만능주의, 동방예의지국을 상징하는 유교의 충/효/예, 그리고 20세기에 진행된 2차 세계대전의 이념적 대립, 민족주의, 자본주의 등 다양한 관점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혼돈의 영역이 아직까지도 전개되고 있다.


뭐든 잘하면 뭐 하나? 사람이 먼저 되어야지.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한 번 즈음 들었던 말이다. 요즘 청소년 이하의 아이들은 저런 말을 듣고 자랐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 말을 한 번도 안 듣는 세대에 소속되어 있다면 유토피아에 살고 있거나, 예견된 지옥에 살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지 ‘라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만, 어른이 된 내가 사용한 적은 결코 한 번도 없다. 열심히 살았지만, 어른이 된 나도 내가 [사람]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르렀다고 본다. 스스로를 [사람]이라 인정하기 어려운 만큼, 내가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졌다.


네가 생각하는 수준의 [사람] 찾기 어려워,
조금만 기준을 낮추고 행복해져라.


약 10년 전에 내가 형에게 들었던 말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내게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이 0명이었던 나를 형이 걱정하는 마음에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내게 ‘친구’라고 할 법한 [사람]은 그로부터 5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형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희망적으로 본다면 그나마 충고를 받아들여 1명의 ‘친구’ 같은 타인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의 ‘친구’는 지금의 아내가 있고, 그 외엔 아무도 없다. 나 또한 누군가의 ‘친구’로 남을 생각은 없는 입장이지만, [사람]으로서 기억에 남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남성에게 있어서 [인정의 욕망]은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의 그것은 ’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인생의 절반이상을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다양한 가르침을 받아들여왔다. 어린 시절 강제적으로 다녔던 교회(개신교-순복음)에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학교에서는 말을 참 안 들었던지라 선생님의 매타작을 허구한 날 받았다. 한 해 동안 잘 패는 선생님 기준으로 200대 이상의 매타작을 감내해 왔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일부러 채벌을 갈망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로 나는 닥치는 대로 교양, 철학, 심리학 등의 여러 책을 전전긍긍하여 내가 생각하는 [사람]의 기준을 차츰 구체화시켜갔었고, 마침내 내가 스스로에게 [사람]의 자격을 부여한 것은 군대에 전역하고 나서

!

라고 말하면 진짜 재미없고 보고 싶지 않은 글이 될 것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다들 이 글을 읽고 ‘전역한 후에 철들어서 ‘ 같은 헛소리는 다시는 안 하기를 권장한다. 같은 남자라도 죽빵 마렵게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중생들은 내가 생각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징병 문화는 일시적인 효자 생성 머신일 뿐이다. 요즈음 병영은 그런 기능도 해내지 않는다(라이프 포인트 슬롯머신인 점은 여전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마침내 내가 스스로에게 [사람]의 자격을 줄 수 있는 단계가 온 것은 [상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서 비롯되었다.


“사랑이 없어서”


20대부터 30대까지, 정확히는 결혼하기 전까지 ‘친구’에게는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연애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기여했다. [여미새]라고 말씀하신다면 그건 그거대로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성과의 만남에 목을맨 이유는 반영구적인 관계를 정립하고 싶은 마음과, 인생의 큰 과업(결혼, 가정)을 수행하고 싶은 두 가지 관점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실패할 때마다 내가 인생을 함께 동반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마주해야만 했다. 이 과정을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자면, 내가 [사람]이 되기 위한 깨달음을 얻고, 나 스스로에게 상실의 이유를 찾아 나선 단계는 극후반에 해당되며, 이것은 불과 2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 후로 나는 쉽게(?) 결혼에 성공하였다. 마침내 어느 한 사람에게 [사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된 것이다.


아직도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하여 아직 나를 [사람]으로 100% 인정하진 않지만, 여느 타인에게 내가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까지는 도달했다. 제법 긴 여정의 끝에서 [사람]을 만나, 앞으로 더 나아갈 여정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당신의 주변에는 누가 [사람]으로서 곁에 있는가?

당신은 혹자에게 [사람]으로 인정받는 상황인가?

당신은 [사람]인가?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보는 걸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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