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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Jul 03. 2019

임시숙소 부적응자

Have a good day!

 빅토리아에 밤늦게 도착했기에 미리 예약한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는 것이 첫 목표였는데 그 목표는 성공했습니다. 구글 지도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숙소에 도착했고, 수속까지 완벽하게! 제가 예약한 숙소는 Ocean island라는 곳으로 1891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에 위치한 호스텔이었습니다. 역사를 반증하듯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보였고, 그런 낡은 느낌마저 인테리어라고 느낄 정도로 모든 게 신선해 보였죠. 제 방 기준으로 6인 1실에 부엌과 샤워실은 공동, 아침과 저녁식사는 무료 제공(저녁까지!)이라는 조건의 숙소에서 2주간 지낼 생각을 하니 들뜨기도 했지만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잤기에 심신이 미약했던 저는 바로 잠을 이뤘고..


아니 이루려고 노력했고.. 


 노력했습니다. 잘 자고 싶었어요. 근데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운 것 같아요. 가족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아름다운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인 할아버지의 코골이'. 이 호스텔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며칠 지내고 난 후 살펴보니 아예 사시는 분들도 꽤 되는 곳이었습니다. 아마 그 백인 할아버지도 그런 분이셨던 것 같은데, 처음엔 KFC 입구를 지키는 푸근한 느낌의 인상이셨기에 반갑게 인사했지만 코골이에, 방귀까지 제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생리현상을 뿜어내셨습니다.


정리 안된 침대가 마치 그때 제 마음속 같네요
방귀 공격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새벽에 공용 부엌으로 내려와 먹었던 차 inner peace...


 게다가 기대했던 저녁식사조차 제 입맛에 맞지 않았습니다. 카레도 아닌 것이 수프도 아닌 것이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쌀과 함께 같이 먹는 음식이었는데(이때만 해도 외국음식에 대한 눈이 덜 떠질 때였습니다. 이해해주세요.) 아무리 음식에 입맛을 맞추려고 해도 맞춰지지가 않았습니다.


이 두 친구 이름 아시는 분 있으면 좀 알려 주세요.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부적응자가 돼버렸고, 큰 용기를 갖고 남은 예약 기간을 취소하기 위해 데스크 직원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잘 안 되는 영어로 “나 남은 기간 취소하고 싶어.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라고 웃으며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취소? 그래 해줄게. 근데 돌려줄 수 있는 돈은 없어.”


‘?’


 그때 느꼈던 당황, 황당, 당혹, 놀람의 감정은 지금 이 순간도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되물었죠. “아니, 왜? 나는 그 기간을 아직 살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더니 “우리의 환불규정에 그렇게 쓰여있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미안해. 취소는 방금 됐어. Have a good day


 조금만 더 참아볼걸 그랬어요. 할아버지의 방귀 냄새도, 코골이도, 이름 모를 그 음식도.

타국에서 무슨 편안한 삶을 기대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안정적인 ‘집’을 구해서 ‘내 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며칠 임시숙소에 머무는 동안 마음에 드는 집을 생각보다 빨리 찾았기 때문에 갈 곳은 있는 방랑자가 되어 숙소를 떠났습니다.


잃어버린 10만 원의 아쉬움은 그대로 두고..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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