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이성형 HK교수님이 집필한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란 책을 읽었다. 책 제목을 보면서 진짜 이유가 궁금해져 잠시 답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뭔가 대단하고, 심오한 답을 기대했었지만, 저자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 당시 오스만튀르크가 동쪽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향했어야 했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 답이기에, 싱겁고 멋쩍었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처럼 말이다.
15세기 대항의 시대는 향신료 찾아 삼만리라 볼 수 있다.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동서 간에 이루어진 향신료 무역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하나가 있다. 왜 그 당시 사람들은 위험한 바다를 항해하면서까지 그토록 향신료를 구하려 했어야만 했을까? 확실한 건 누군가 그것을 필요로 했었고, 누구든 향신료만 구할 수 있다면 분명 큰 돈을 벌 수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큰돈을 주면서까지 향신료를 필요로 했던 자들은 또한 누구였을까? 바로 그 당시 부자였던 성직자 그리고 왕과 귀족들이었다. 돈 가진 자들이 그들의 미각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쓰겠다는 수요가 있었기에, 이를 공급할 대항의 시대의 향신료 무역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가진 것으로 산다. 가진 것이 없다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는다. 필요는 부족함의 또 다른 단어이다. 내가 부족하다면, 가지려는 필요가 발생되고, 이는 수요를 낳고, 이런 수요는 공급을 불러온다. 수요를 맞춘 공급에는 반드시 커다란 부가 따르기 마련이다.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유로메나 (EuroMena = 유럽, 중동 북아프리카)라는 용어가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는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문명은 유럽문명의 뿌리, 그리스 로마 문명에 수학, 천문, 지리, 역사, 화학, 농업등 전분야에 걸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중동 북아프리카사를 뺀 유럽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경작지와 수자원이 매우 부족한 고온건조 기후를 갖는다. 토지의 많은 부분이 사막이며 농경지는 극히 일부이기에, 이를 타개책으로 건조지역에도 사육 가능한 목양(염소,양)을 택했다. 염소와 양에서 고기,젖, 그리고 가죽을 얻어 의식주를 해결했었다.
고온건조한 중동 및 북아프리가와 인접한 남부유럽의 여름은 고온건조하고 겨울은 온난습윤한 지중해성 기후를 갖는다. 한편 중북부유럽은 겨울철은 온화하고 다소 많은 비가 내리고(연평균 강수량 700 ~ 1500mm), 여름철은 서늘한 해양성기후를 지닌다.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등 남부유럽은 비교적 수자원과 농경지가 풍부하고 일조량도 풍부하다. 그래서 농업에 특화할 수 있었고, 이들 국가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맛있는 음식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중북부유럽은 적은 일조량과 많은 강수량으로 농업보다 목축업이 더 적합하다. 고온건조한 중동 및 북아프리카는 적은 강수량때문에, 저온습윤한 중북부유럽은 적은 일조량때문에 각각 목축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의식주 중 인간이 살아가며 매일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식'이다. 인간은 하루 세끼를 먹는다. 목양 문화에서 주식은 바로 '고기'다. 그러나 '염소고기'나 '양고기'는 특유의 노린내가 심해 먹기가 고약하다고 한다. 양고기는 1년 미만 어린양고기(lamb)와 1년 이상 자란 양고기(mutton)가 있다. 램 고기는 부드럽고 냄새가 별로 심하지 않지만, 머튼 고기는 질기고 냄새가 매우 심한 편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엄밀히 말하면 '짐승의 사체'이다. 상온의 사체는 일반적으로 3일째부터 부패가 시작된다. 한국의 장례식이 3일장인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냉동기술이 없었던 중세시대에 육식문화는 도축 후 바로 소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을 앞두면, 겨울철에 가축이 먹일 사료가 부족했기에, 씨가축과 일부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조리 도축해야만 했다. 이렇게 도축한 고기와 부산물은 염장이나 훈제고기와 소시지로 만들어졌다. 염장 혹은 훈제된 고기는 먹기는 했지만, 신선하지 못한 고기에서 뿜어 나는 고약한 냄새로 먹기가 쉽지 않았었다.
결론적으로, 양고기 특유에 노린내와 염장 고기의 쿰쿰한 맛을 왕과 귀족들의 미각에서 일거에 제거했던 것이 바로 향신료였다. 부족함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라 한다. 만약 향신료가 필요치 않았던 식문화를 유럽인들이 가졌었다면,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전 세계의 만성적인 배고픔을 해결해 준 콜럼버스의 교환(감자, 옥수수)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