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아비투스 세상

by 유동재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대선은 0.7%, 지방선거 중 최고의 박빙, 경기도지사 선거는 0.18% 소수점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결 속에서 중도층이 급격히 사라져 오로지 극한으로 치닫는 우파와 좌파만 존재함을 알 수 있았다.


2000년 전 고도성장은 이제 더 이상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부익부 빈익빈, 부의 편중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모든 가치의 척도가 돈인 세상, 자본주의 시대에 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해 부자가 되겠다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자본 중심주의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도성장이 멈춘 한국사회에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신분상승과 계층이동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 너무 커, 부의 불평등 간극이 좁혀지는 것을 기대하는 무리일 듯싶다. 부의 대물림이 일반화되면서 예전부터 유일한 신분상승의 통로였던 교육마저도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자들의 엄청난 사교육비 투자와 부잣집 아이들의 편법적인 부모 찬스사용은 가난한 집 아이들의 꿈을 향한 의욕마저 꺾어버렸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처음 제시한 아비투스라는 개념이 있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 말이다. 간단히 말해, 아비투스는 태어난 가정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갖게 된 성격이다. 출생의 제비뽑기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부자 부모를 만나,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누리는 혜택은 그렇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인생과 엄청난 간극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적 차이도 벅찬데, 이제는 부의 대물림에 의한 사회문화적 차이는 감당 불가한 수준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없다. 건강한 사회는 계층이동이 원활함을 전제한다. 꿈과 희망이 안보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막을 내리게 되어있다. 부의 대물림은 가난한 자들의 꿈과 희망을 빼앗고 있다. 그래서 내일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기보다는 오늘의 생활고에 시름하며 안주하려 든다.


창밖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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