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하게 살자
코로나 팬데믹때문에, 고향을 찾기보다 비대면 화상으로 제사와 세배를 대신한다는 뉴스를 봤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정체되는 고속도로가 이번에도 몸살이었다. 5일간의 설날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국민학교 시절, 나에게 설날은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평소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과 설빔이라는 새 옷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과식하기 마련이다. 설이 아니면, 추석 때나 맞볼 음식들이었기에, 배 터지도록 꾹꾹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라가 잘 살아, 언제나 먹고 싶은 것을 손쉽게 먹을 수 있기에, 더 이상 미련하게 과식하지 않는다. 아마도 먹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시절, 경제학 원론 첫 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경제학과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은?"라는 질문을 하셨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탓에,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결국 교수님은 "공통점은 인간의 효용을 극대화이고, 차이점은 실현 방법이다. 즉,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욕심을 줄이지 못하기에, 차라리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에, 종교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인정하고, 금욕주의를 통해 인간의 욕심을 줄이는 노력에 중점을 두었다"라고 답해 주셨다. 욕심과 자원의 상관관계를 반비례로 설명하신 듯하다.
경제학의 '한계효용 체감'이라는 법칙도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으면, 총효용은 늘어나지만 단위 효용은 줄어든다는 말이다. 같은 것을 계속 먹으면 질린다. 익숙함만 있고,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필요하다. 바람은 변화고, 변화는 성장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이룬 성장 덕에 생존은 더욱 공고해진다.
우리가 사는 반비례 세상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한다. 한 가지 선택은 다른 것의 포기를 내포한다. 버려진 선택을 '기회비용'이라 한다. 최선을 고르려 하지만, 언제나 선택은 어렵다. 때로는 자기 선택을 피하고, 운명에 맡기고 싶은 경우도 종종 있다. 그만큼 결정이 쉽지 않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내일, 연휴 동안 멈춘 소리 없는 돈벌이 전쟁이 재개된다. 치열한 경쟁이다. 하루 24시간, 게임은 시작과 끝은 동일하다. 단지 하루의 시간을 돈벌이 노동(work)에, 아니면 놀이 라이프(Life) 쓸 것인지 각자의 몫이다. 노동과 놀이 그리고 work와 life는 상호 반비례다. 한쪽이 늘면 다른 한쪽은 줄어든다. 돈과 시간, 모두 적당한 선이 있다. 그 선을 넘는 시점부터 가질수록 불행해진다. 최선은 덕업 일치다.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되면 금상첨화일 듯싶다.
그러나, 좋아해서 시작한 취미가 때로는 싫어질 때도 있다. 싫음에도, 상황에 밀려서 억지로 하게 되면, 취미는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이다. 한국은 술 권하는 사회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마시기 싫은 때도 있기 마련이다. 적당한 음주는 약이지만, 과도한 음주는 독이다. 접대 업무를 전담하는 '술상무'에게 음주는 지겹다. 유흥업소에 종사자들도 집에서는 술을 안 마신다. 일류 요리사도 집에서는 요리하지 않는다. 웃기는 재주가 직업인 개그맨도 집에서는 말하기를 꺼려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선을 넘어 노동이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니다.
세상은 반비례 요지경이다. 중용하게 맛있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