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구별:똑똑함과 현명함은 다르다!

inteligente(=smart ) vs. sabio (= wise)

by 유동재

장유유서라는 말이 있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라는 뜻이다. 세월이 지났어도, 일상에서 흔히 서로의 나이를 묻는 모습도 장유유서의 단면이다. 관계를 맺기 전, 먼저 서열을 정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일종의 사회적 관습으로 굳어졌다.


세상이 초고속으로 변화하면서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어린것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나이 먹은 이의 간섭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다 틀리기도 하고, 둘 다 일리가 있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 생각된다.

나이 든 이들은 요즘 아이들이 위아래가 없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어릴 때, 자신이 젊을 때는 안 그랬다는 말을 하면서 요즘 젊은것들은 ‘장유유서’도 모른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도 요즘 우리 사회는 장유유서가 문제다. 나이 어린 사람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나이 든 사람의 처지에서도 그렇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의미는 ‘나이 많은 이와 나이 어린 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는 뜻이다. 이 단순한 표현의 말이 많은 오해를 불러오는 것 같다. 즉,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늘 윗사람 위주로 생활해야 함을 나타내는 말로 생각하는 것이다. 윗사람은 대접받아야 한다는 의미로만 사용한다. 오늘날 서열 중심의 우리 사회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장유유서의 해석을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권위주의적 문화도 어찌 보면 장유유서의 오해에서 비롯된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



근대 산업시대 이전, 농경 목축 시대에서 어른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인터넷이 없었고, 책도 귀한 시절, 거의 모든 지식은 어른들의 독차지였다.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어른 손에 달렸던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은 어른들을 공경해야만 밥이라도 먹고살 수 있었다. 장유유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넘치는 고급 정보가 지천에 깔렸다 TV, 라디오, 책, 신문, 포털 검색, 지식백과, 유튜브, 블로그, 브런치 등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손쉽게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이가 어른에게 의존해야 될 주변 환경이 사라진 것이다. 당연히, 장유유서라는 말이 왠지 꼰대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이제 장유유서는 필수가 아니다. 아이들이 어른을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성인이 되는 나이는 영역에 따라 다르다. 민법에서는 만 19세이지만, 만 18세만 되어도 근로, 납세, 결혼, 선거권, 운전면허 취득권 등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만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으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나이를 운운하며, 장유유서를 고집하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로 인한 세대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2021년 국민의힘 대표로 35살, 이준석 후보가 당선되었다. 자칭 보수당에서 30대 후보가 당대표가 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고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 대표는 당대표로 선출된 후, 국민의힘 대변인을 토론배틀이라는 참신한 공개경쟁채용방식을 도입해 2030 세대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했다. 권위적인 정치권에 참신함을 보여주었다.



최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윤석열 후보 측과 선대위 구성과 역할과 관련해서 이준석 대표와 많은 갈등이 있었다. 결국 이준석 대표는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국민의힘 장유유서의 꼰대 기질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당대표가 어리다.' '싹수가 없다.'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가만두지 않겠다.' '혼쭐을 내주겠다.' 역대 어느 당대표에게도 하지 못했던 막말과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국민경선으로 적법하게 선출된 당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보다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당대표 자리가 갖는 무게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참으로 반민주적 만행을 자행하였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아이의 순서를 정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진다는 솔선수범까지도 포함한다.


멕시코 로스쿨에서 다닐 때, 동기생들과 나이 차이가 꽤 많았다. 한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시작한 공부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동안이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안에 가깝다. 때문에, 실제로 겉보기에 동기들과 나이 차이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동기들로 부터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에 썩 유쾌하지 않던 차에, 하루는 친한 동기에게 내 나이를 말하면서, 소위 어른 대접을 요구했다. 동기는 말하길 "대접은 청하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El respeto no se pide sino se gana.)"라고 답했다. 괜스레 머쓱해졌다.



그렇다. 장유유서는 어른들의 솔선수범으로 얻는 것이지, 세월 지나면 누구나 먹는 나이로 요구할 것이 아니다. 만 19세가 되면, 모두가 성인이다. 어른이 되는 것이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존중하고 대접하기보다는 또다시 나이로 구분 지어 서열과 차별을 두려는 태도는 온당하지 않다.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세대갈등 혹은 세대 양극화가 보다 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어에 inteligente와 sabio라는 말이 있다. inteligente는 영어로 smart이고, sabio는 영어로 wise이다. 서한 사전이나, 영한사전에 의하면, 두 단어 모두 영리한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러나, inteligente는 똑똑함으로, sabio는 현명함으로 풀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똑똑함은 지식을, 현명함은 지혜와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지금, 젊은이들은 수많은 지식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뭐든지 쉽게 검색해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혜는 단순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가질 수 없다. 세월이 묻은 경험과 경륜이 쌓였을 때만, 비로소 지혜를 득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스마트한 지식과 어르신들의 현명한 지혜가 합쳐질 때, 우리 사회가 더욱 조화롭고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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