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and then, why?
세상을 살다 보면, 당연한 것처럼 취급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는 맹목적 종교인의 삶을 서로에게 강요하고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옥죄며, 주위를 구속하는 묻지마 삶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데, 한번 사는 인생을 왜 이렇게 무겁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림자와 같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아무런 무게가 없어 지극히 가볍다면 인생의 덧없음을 독자에게 전하고 했다. 풀잎 위에 맺힌 영롱한 아침이슬도 해돋이와 함께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특히, 한반도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태어나자마자 시작되는 조기교육이 시작된다. 행복을 하고 싶은 일에서 찾기보다, 주위에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일에서 찾기에, 그것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삶이 불안해지고 뒤쳐지는 느낌에 시달린다. 언제나 기준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이고, 이들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매 순간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삶을 짓누른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이처럼 '반드시 뭔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일컫는 개념이 바로 독일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만든 should-be complex다.
영어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입시전쟁의 연속이다. 수능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틀에 박힌 삶의 무게가 너무나 버겁다. 대입 후에도, 좁은 취업문을 뚫고자 영어학원, 어학 해외연수, 컴퓨터 교육,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기업들의 인턴활동 등 숨 막힌 생활의 브레이크는 없다. 설사 취업을 한다 해도, 나인 투 식스의 직장생활로 work and life를 기대하기 힘들다. 잦은 회식과 야근도 근무의 연속이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 이제는 결혼 여부를 묻는 주위 시선에 떠밀려, 사랑 없는 결혼전쟁에 참가해야 한다. 평생직장이 옛말이 된 지금, 삼팔선, 사오정의 직장인들은 자영업 전선에 내몰린다. 그러면, 어느새 인생의 반이 '내 속에 내가 없는 빈 껍데기 인생'이 되어 버린다.
대부분 소싯적 꿈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꿈은 사라지고, 꼭두각시놀음에 지쳐 힘없이 서있는 초라한 모습만 남게 된다. '내일의 꿈이 있어 오늘이 아름답다'라고 한다. 꿈이 있는 자는 영원히 청춘이다. 이제라도 잃어버린 꿈을 찾아, 내 속에 나를 자리매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