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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재 Jan 25. 2022

36. 교육의 본령

La escuela es preparatoria

국민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한글 읽기, 쓰기도 학교에서 배웠다. 물론 구구단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들어가지 전까지는 무조건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수업과 숙제가 전부였다. 요즘처럼 학원, 과외, 인강 등 사교육은 없었다. 공부는 책보다는 놀이를 통해서 배웠다. 


그 당시 공부했던 국어, 산수, 사회, 역사, 도덕, 음악, 미술 등 과목들은 제목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평이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중고등학교의 사회탐구, 과학탐구는 도대체 뭘 배우는 와닿지 않는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비로소 처음 영어를 접했다. 알파벳과 발음기호를 시작해, 맨투맨과 성문 문법책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럼에도 영어권 국가들의 출장이나 여행에서 불편함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글로벌 시대에 대세가 영어에 과도한 교육이 심각하다. 이제 겨우 한글을 배운 유아들에게 영어유치원을 통한 알파벳을 가르치고, 초등학생들의 해외 영어유학을 보낸다고 난리들이다. 세계적으로 영어가 널리 쓰이기에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분명 필요하겠지만,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외국인이 아닌 한국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조기 영어교육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멕시코 학제는 한국과 유사하다. 유치원 (Jardin de niños) 2년, 초등학교 (la escuela primaria) 6년, 중학교(la escuela segundaria) 3년, 고등학교(la escuela preparatoria) 2년 혹은 3년, 그리고 대학교 (la universidad) 5년이다. 그런데 멕시코에서는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아직 한국은 유치원이 의무교육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 가정은 자녀를 여성가족부 산하의 어린이 집에, 외벌이 가정은 유치원에 보낸다. 드디어 자유로운 놀이는 끝나고 지겨운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 집을 마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글은 학교에서 배운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아이는 한글을 알지 못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한글을 모르니 특별한 지도 부탁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요즘은 취학 전 미리 사교육을 통해서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일종의 선행학습이었다. 이해는 가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학교란 단어가 배우는 장소란 뜻이다. 배우기 위해서 학교를 가는데, 미리 배운다면 학교에 갈 이유가 무엇이며,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이고, 학교에 간 학생들은 도대체 뭘 해야 한단 말인가? 학교의 본령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지하자원이 없는 자원빈국이다. 그래서 먼저 해외에서 필요한 자원을 수입한 후, 이를 가공해 다시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체제를 유지한다. 작은 영토에, 조밀한 인구는 치열한 경쟁을 구조화한다. 그래서일까, 오로지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청소년기 아이들의 입시경쟁에 사회와 가정이 시름한 지 오래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인성교육은 늘 찬밥신세다.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국영수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판을 친다. 개개인의 취향과 장점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으로 국영수 위주의 학습만을 강요하는 교육현실에 '영포자들'과 '수포자들'이 양산된다.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절망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교육부 정책으로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춤을 춘다. 사교육 시장의 학원가들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묻고 싶다. 


멕시코에서 고등학교를 'la preparatoria'라고 한다. 사회진출과 대학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뜻을 갖는다.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마친 고등학생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다. 취업 혹은 진학. 그래서 교육과정도 이에 중점을 둔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0년 고교 졸업자 50만 373명 중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36만 2888명으로, 진학률이 72.5%에 달했다. 전년도 70.4%와 비교해도 2.1% 상승한 수치다. 해당 수치는 전문대/4년제 등 모든 대학 유형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한다.


교육은 한국의 대표적인 계층이동 사다리다. 소위 신분상승의 도구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모든 대학은 점수로 서열화되어있다. 출신대학이 사회신분을 거의 결정한다. 그래서 입시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너도 나도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에 막대한 경제적 지출을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을 옥죈다. 아이들의 꿈은 사라지고, 부모들의 목표만 남는다. 


80년대 성북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1학년을 마치고, 문이과를 선택해야 했다. 수학이 어렵다는 핑계로 문과를 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문이과 선택은 수학이 아니라 개인 성향에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이과는 따지고 이해하며 만들고 정답을 찾지만, 문과는 타협하고 느끼며, 깨달으며 적답을 찾기 때문이다. 다행일까, 문재인 정부는 2021년도 수능 시험부터 문이과 통합 입시제도를 발표했다가, 한 해 연기해 2022년에 적용한다고 정정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학원이 아니다. 학교는 집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서 선생님과 급우들 함께 살아가는 연습의 장이다. 그래서 학교는 학문적 지식을 배우고, 주변과 함께하는 교우적 관계를 익히는 준비과정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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