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생각시간

Pienso luego existo!

by 유동재

시시각각 뉴스와 정보가 쏟아지는 지금은 정보화 시대다. 클릭이나 터치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지식은 적어진 듯하다. 왜 그럴까?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 탓에, 충분히 소화시킬 생각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바쁘면 생각할 수 없다. 혼자만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처럼 매일매일 화장실에 가지만, 스마트폰의 청취 습관에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위에 주말이면, 등산, 낚시, 산책, 캠핑 혹은 독서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모두들 혼자만의 생각시간을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마음이 공허해 차를 몰고 하남시 팔당댐 근처 '검단산으로 향했다. 경감로 좌측으로 빠졌어야 했는데, 깜박하고 길을 지나쳤다. 유턴할 곳이 없어 그냥 가평을 지나 청평으로 향했다. 가던 중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흐르는 강물을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봤다. 겨울바람이라 몹시 차가웠다. 다시 차에 올라 강변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조금 가다 보니 펜션 밀집 동네가 나왔다. 무작정 계곡을 따라 차를 몰았다. 토종닭 간판을 건 식당 앞마당에 뛰노는 닭, 토끼, 강아지들의 모습이 시골스러웠다. 문득, 내 위치가 궁금해 핸드폰의 내비를 켰다. 지도에 '여여암'이라는 사찰이 보였다. 왠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사가 급해, 차로 이동했다. 몇 백 미터 오르니, 산사 진입도로 앞에 '출입금지'라 적힌 물통이 있어,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사찰에 도착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공사흔적이 있는 걸 보니, 아직 완공된 사찰이 아닌 듯싶었다. 산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불교명상 음악이 공허한 나의 심금을 울렸다. "선행을 베풀면 덕을 얻는다.", "하나의 선은 백 개의 덕으로 돌아온다.", "쌓인 덕은 자손들에게 수많은 복이 된다.", "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이승에서 얻은 것은 이승의 것, 절대 저승으로 못 가져간다.", "재물을 모으면 베풀어야 한다.". 등등..


조금은 채워진 마음과 산사의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진 듯했다. 문득,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는지? 자문자답하게 됐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과 ' 하늘의 비행기와 우주의 탐사선'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천국은 하늘에 있다는 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아직까지 주말이면 교회, 성당, 사찰, 혹은 모스크를 찾아 종교활동을 계속하는 걸까?라는 자문에 나름의 자답을 찾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르네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인식과 존재를 설명했다. 종교는 생각이고, 생각은 인간이다. 그래서 종교생활은 지극히 인간적 활동이다. 어원적으로 종교란 으뜸의 가르침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뇌의 생각 활동이다. 신의 존재 여부는 불가지론이기에, 답은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이유는 신을 만나기보다는 종교 안에서 '어제의 자아'와 '오늘의 자아'가 만나, 자신과 대화를 하려기 때문이다.


흔히, 철부지에게 "철 좀 들라"는 말한다. '철'이란? '생각'이다. 무슨 일이든 함부로 생각 없이 하려 말고, 행동하기 전에 신중하게 충분히 먼저 생각 좀 하라는 뜻이다. 흔히 공자, 맹자 등 동양철학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철학을 말하면, 대단히 고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닌 '생각 배우기'에 불과하다. 일상의 문제는 대부분 답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겪고 있는 걱정과 고민의 답을 주위에 묻기보다 혼자만의 생각시간을 통해 스스로에게서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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