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bla bonito!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대접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면, 요즘은 "라테 꼰대"로 폄하받기 십상이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옛날 향수에 젖어, 옛것만 주장하고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갈등과 분쟁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2006년 개봉한 신한솔 감독의 "싸움의 기술"이란 영화가 있다. 주인공 오판수가 영애라는 여자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때, 영애는 "뭘 쳐다보세요?"라고 묻는다. 오판수는 "너 자세히 보니까 예쁘다"라고 답한다. 그러자, 영애는 다시 "자세히 보지 않으면요?"라고 되묻는다. 이에 오판수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보이지! 세상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거야!"라고 답한다. 그렇다."자세히 본다"는 것은 관심, 즉 집중해 마음을 연결을 뜻한다. 마음이 없으면 느낄 수 없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소리 없이 변화한다. 단기적 관점에서 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기에,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자기 업데이트가 되지 못한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다. 이를 거부하면, 낙오되어 도태되고 만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변화에 능동적인 수용자세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진중함이 너무 무거우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해 스스로 무너진다고 했다. 변화의 수용은 가벼워야 이동해 움직여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알려준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라고 한다. 모든 문제는 세치 혀에서 비롯된다. 입조심하라는 뜻이다. 다른 외국어에 비해, 한국어에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욕들이 존재한다. 군사정부 시절 초중고와 군대 생활한 탓인지, 습관적으로 욕을 많이 사용했었다. 이유는 없었다. 단지 재미있고, 상대보다 세게 보이고 싶었던 치기 어린 수컷의 본능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자제하려 애쓰지만, 가끔씩 의연 중에 툭툭 거친 말들이 나와 당황하게 된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습관적으로 육두문자를 썼나 보다.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을 때, 딸아이가 내가 다가와, "아빠 이쁘게 말해!"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이쁘게 말하라고 가르쳐줬다며, 내 표현을 고쳐주었다. 부끄러웠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개인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더 좋은 말이 있는데, 굳이 덜 좋은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상대에 대한 존중은 갈등을 피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기본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하고 존중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인격이 높이는 행위며, 그 믿음과 신뢰의 토대 위에 보다 좋은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 출발이다.
"말은 생각의 표현이고, 표현은 습관이다." 애초에 남에게 욕하거나, 남을 흉보는 습관을 버린다면, 굳이 이쁘게 말하려 일부러 조심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좋은 단어를 쓰는 언어 습관을 들이자. 이쁘게 말해! 를 염두해, 오늘부터라도 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게 이쁜 말을 써보려 함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