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유목기 2

탭댄스 편 : 묻어가는 것도 괜찮다

by 김정민

합정역 뒷골목의 조용한 주택가 건물의 지하 1층.

본의 아니게 나의 두 번째 운동 공간 역시 향기롭지는 않았다.


탭댄스라는 범상치 않은 종목이 내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은 과 동기 때문이었다.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같이 했었고 지금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며 연기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고 있던 동기 A가 탭댄스 동아리에 함께 들자고 권유해 왔다. 나는 리듬감이 없고 춤을 못 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 새ㄲ, 아니 A는 집요했다. 탭댄스는 4분의 4박자로 추는 거라서 방송댄스 재즈댄스 등과는 다르게 정해진 동작만 잘 따라가면 된다고. 연기에 재능이 없으면서도 대학에서 4년 내내 연극에 발을 담갔던 나는,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예술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싶어 하는 잠재적 욕망에 또 말려들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복싱 편에 등장하는 '줄넘기만 하다가 군대 간' 놈이 이놈이다)


그곳은 정식 학원은 아니었고, 동아리처럼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선생님이 되어 나머지들에게 안무를 가르치는 형태였다. 한쪽 벽이 전부 거울로 된 연습실을 빌려야 하니 공간 사용료를 1/n로 나눠서 부담하는 식이라 학원비에 비해 상당히 저렴했다.

대학 때 연극 연습을 하던 느낌과 유사하기도 하고, A가 말한 것처럼 리듬감이 없어도 루틴만 잘 따라가면 되었기에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탭 슈즈를 신고 바닥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발을 튕길 때는 경쾌한 느낌에 스트레스도 풀렸다.

(그러고 보면 운동 초창기에는 샌드백을 치든 탭슈즈를 치든 타격감이 있는 것을 선호한 것 같다. 그만큼 야근이 많고 상사나 거래처에 시달리던 시기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음악을 틀어놓고 텅 빈 연습실에서 한 곡을 완주하는 행위는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 엑셀과 씨름하던 직장인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느낌은 회사-집을 택시와 광역버스로 왕복하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 같이 음악에 맞춰서 통일된 안무를 수행하는, 이른바 '군무'만이 주는 매력이 있다. 혼자서 다 해내야 하는 부담감도 없고 내가 조금 틀려도 묻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간 동작을 다 까먹고 팔을 휘적휘적 거려도 엔딩 모먼트에 촥 맞춰서 포즈만 하고 웃음으로 떼울 수 있었다. 어차피 취미인데 실수 좀 하면 어떤가, 내가 프로인 영역은 따로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소속감과 유대감. 몸을 부대끼고 같이 땀을 흘리다 보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 지어도 금방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취미로 즐기는 인구가 많아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은근히 많다는 게 탭댄스의 장점이기도 했다. 체력과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운동이라지만, 공연 날짜가 정해졌다든가 하는 구체적 목표가 있어야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인간이니까.


하지만 탭댄스 역시 석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는데, 첫 번째 원인은 동아리 형식으로 모여서 하다 보니 정해진 요일에만 딱 맞춰서 가야 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약속 때문에 못 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학원이었다면 다른 요일에 수업을 대체할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불가능했다.

처음에 나를 꼬드겼던 동기 A 역시 홍보팀의 특성상 기자 접대와 회식이 잦았고 점점 안 나오는 날이 잦아졌다. 새벽에 출근해 아침 조간신문에 나온 기사를 모두 스크랩하고, 점심에 기자를 만나 접대를 하고, 저녁에는 회식으로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가진 그 당시의 A에게 위로를 보낸다.


탭댄스를 그만두게 된 이유는 또 하나 있었는데, 종아리가 굵어진다는 느낌적 느낌 탓이다. 탭을 하려면 발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점프하는 동작이 많은데, 그래서 종아리 근육이 늘 당겼다. 안 그래도 오르막길 많은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느라 굵어져 있던 내 종아리가 더 커진다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이러면 미디스커트 입었을 때 안 예쁠 텐데...

여성은 날씬해야 하고, 여리여리 해야 하고, 말라야 하고... 이런 기준을 들이대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어온 나지만 그럼에도 늘 살찌는 것을 경계하고 날씬하지 않은 몸을 내 것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무리하게 굶거나 하지 않아도 늘 날씬한 나, 타고나길 마른 몸으로 태어난 나, 그런 내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니야~"라곤 하지만 속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는 나의 모습.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좋아 늘 1등을 하는 우등생의 flex 처럼, 노력하지 않는데도 날씬한 몸을 유지한다 라는 거짓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30대가 되어서도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운동 유목'을 계속하는 동안 여성의 신체와 주체성에 대한 이성적인 입장과 내 몸에 대한 선입견 가득한 무의식은 늘 대립하는 관계였고 그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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