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동 유목기 1

복싱 편 :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by 김정민

“살려고 운동하는 거야”


3n살이 된 이후로 운동은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체력장에서 100미터 달리기 20초를 넘기기 일쑤고 피구라도 했다 치면 제일 먼저 공 맞고 수비로 빠지던, “올 수” 일색인 성적표에 유일하게 체육으로 “가”를 맞아 오점을 남기곤 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시작은 어깨 통증을 달고 살던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CG회사에서 근무하던 나는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 먹듯 하며 비염에 위염, 역류성 식도염과 거북목을 가진 비루한 몸뚱이였다. 어깨 아프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고 타이마사지에 여윳돈을 탕진하곤 했다. 20대 때는 나이가 깡패라 야근을 마친 후에도 자정부터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하고 3시간만 자고서도 출근이 가능했지만, 30대로 진입한 후로는 뒤늦게 가입한 펀드 수익률처럼 우수수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때 마침 회사에서는 복싱 동호회가 생겼고 여성 회원이 많아야 동호회가 흥할 거라 여겼던 회장의 야심으로 나는 그들의 타깃이 되었다. 마음먹고 운동을 해본 적 없던 나는 혼자서 낯선 곳에 가서 운동하는 것은 두려웠기 때문에 여럿이 어울려서 배운다는 데 혹했고, 복싱은 운동 후 매일 치맥에 삼쏘를 곁들여도 살이 빠진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낚이고 말았다.


처음 운동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헬린이들이 대개 그렇듯 운동복과 장비를 사들이면서 카드를 긁고 시작했다. 회사에는 헬스장 연간회원권을 끊어놓고 가지 않는 '기부천사'들이 가득했고, "요가학원에 돈 낸다고 살 빠지는 거 아닌 거 알지?" 같은 빈정거림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나 역시 돈만 버리는 거 아닐까 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돈을 써야 했다. 운동복을 지른다는 건 돈으로 의지를 사겠다는 거니까.



일산동구청 근처에 위치한 대형 상가 건물 안에 있었던 복싱체육관에 대한 내 첫인상은... 퀴퀴함이었다.


사람들의 땀냄새와 젖은 수건의 쿰쿰함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적응이 힘들었다. 샤워실은 있으나 쾌적하지 않았고 여성 회원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었다. 탈의실의 노란 장판 바닥은 끈적거리고 드라이기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샤워실 동선은 엉망이어서 여자 샤워실이 없었는데 나중에 부랴부랴 만든 티가 역력하게 났다. 애초에 여성회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되었다가 복싱 다이어트가 유행을 타면서 이들을 고객으로 유치해야만 하는 '마음 급한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칙칙한 색깔의 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마다 남자들의 공간에 셋방살이를 하는 기분이 들어 늘 찜찜했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됐지 시설이 뭣이 중한디 라는 80년대 복고 느낌과 '라면만 먹고 우승했어요' 같은 복싱 챔피언 감성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반면에 나중에 요가학원을 다니면서는 탈의실 샤워실이 깔끔하고 여성을 위해 디자인된 공간이라는 점이 좋았지만, 그것 역시도 정형화된 여성 취향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까다로운 취향 되둉합니다...-_-)


탈의실 문제를 제외하면 복싱 자체는 재미있었다. 손목에 흰 붕대를 감으면서 시작되는 준비과정이 뭔가 맘에 들었다. '이제부터 강해질 거야' 같은 소년만화 감성이 있었고, 진짜로 내가 조금 강해지는 것 같은 자신감도 붙었다. 금요일 퇴근 직전에 일을 던져주는 거래처 진상 놈을 떠올리며 주먹을 내지르는 쾌감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하얗게 불태웠다.”

흰 붕대를 다른 빨래와 같이 빠는 바람에 핑크색으로 변했지만 그마저도 여자 복서임을 드러내 주는 시그니처라고 여겨 예쁘다고 생각했다. 출근할 때 글러브를 챙겨 나오면서 나이키 광고에 나오는 시크한 여성이 된 것처럼 뿌듯함도 느꼈다.


당시에 체육관에서 가장 의미심장하게 배운 건 3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깨달은 것이다. 쉴 새 없이 3분마다 종이 울리는데, 그에 맞춰서 줄넘기도 하고 원투 잽도 하고 스파링도 했다. 3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영겁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반대로 휴식도 3분에 맞춰하기 때문에 그때는 똑같은 3분도 순삭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내놓기 전에 복싱을 했던 게 틀림없다.


대학시절 남자 동기가 복싱을 배우러 갔다가, 취미로 할 거냐 제대로 배울 거냐 라는 질문에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제대로 배울 거라고 했다가 군대 가기 직전까지 줄넘기만 하다가 갔다는 얘기가 떠올라, 나는 처음부터 재미로 배울 거라고 관장님께 신신당부했다. 관장님은 나의 ‘재미’가 떨어질 것이 두려웠는지 생각보다 빨리 기술을 알려주었고 링 위에서 잽을 받아주는 것도 꽤 잦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 회원들에겐 그런 일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8:2 정도였는데, 관장님은 여성 회원들에게 유독 잘해주었고 남자 회원들은 자기들은 찬밥 신세라며 불평하곤 했다. 하지만 자세를 가르쳐 준다는 호의 아래 은근한 신체 접촉이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몇 년 뒤에 가게 된 헬스장에서는 남자 트레이너가 자세를 잡아줘도 덜 불편했는데, 규격화된 매뉴얼대로 알려준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복싱 관장님의 행동들이 불편했던 건 여성 회원에게 '너에게 특별히 뭔가를 알려준다'라는 사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별대우라는 건 받는 사람이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여자 치고 잘한다'라는 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운동 능력은 늘 남자를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고 여자가 이 정도면 괜찮다는 식의 말들. 안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며 차별의 서러움을 느끼는 날들이 많은데 내 돈 내고 여가를 즐기러 간 곳에서마저 그런 감정을 겪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감정과 함께했던 두 달간의 복싱 생활은 곧 끝이 났다. 운동을 마친 후 늘 따라붙는 동료들과의 치맥, 삼쏘는 애초의 목적이었던 건강증진과 다이어트를 방해했고 그마저도 야근이 더 잦아지면서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는 지금보다 워라밸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낮았던 시절이었다.

며칠씩 회사에서 밤을 새우며 집에 씻으러 다녀오는 게 당연했던 시대가 가고, 영화 촬영장에서도 주 52시간을 지켜 촬영을 하고 다음날 콜타임까지 12시간 휴식이 주어지는 날이 왔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관장님의 젠더 감수성도 조금은 변하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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