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바네 May 18. 2023

내 딸에게 마운팅하는 나의 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8

심바가 두 살 때쯤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강아지 동반 펜션에 놀러 갔다. 마당도 있고, 작지만 펜션부지 안에 계곡도 있어서 심바가 신나게 뛰어놀았다. 심바가 수영을 할 수 있는 줄 몰랐는데, 갑자기 계곡물에 뛰어들어 우리 부부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놀고 방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갑자기 심바가 내 등에 매달려 마운팅을 했다. 심바의 첫 마운팅이었다. 의사나 훈련사들 말에 따르면 강아지들은 신나거나 흥분했을 때 마운팅을 한다고 한다. 심바는 이미 중성화를 한 후라 성적인 의미는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니 충격적이었다. 아들이 야동 보는 걸 발견했을 때 기분이 이러할까. 


심바는 그 뒤로 취미생활처럼 우리 팔이나 다리에 매달려 마운팅을 했다. 어떨 때는 못하게 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그냥 하게 놔두기도 했다. 어떤 개들은 인형이나 쿠션에 하기도 한다고 해서 대체물을 제공해 보았지만 심바는 사람의 몸에 마운팅하는 것을 좋아했다. 뭐, 어쩌겠는가. 상대는 강아지, 내가 말로 설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운팅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의 나태한 대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고 그때는 그랬다. 






아기는 누워만 있던 시기를 거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앉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심바는, 어느 날 아기에게 마운팅을 했다. 너무 놀라서 심바를 불렀지만 심바는 아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함부로 떼어냈다가 아기가 물릴까 봐 내 다리를 아이들 사이에 끼워서 밀어냈다. 심바는 마운팅을 하면서 사람의 몸을 앞발톱으로 박박 긁어놓기 때문에 아기가 긁힌 곳이 없나 온몸을 살폈다. 다행히 빨리 발견했는지 아기가 긁힌 곳은 없었다. 심바는 나에게 또 맞았다. 심바가 처음으로 나에게 마운팅을 했을 때의 충격과는 또 다르게, 내 딸이 성추행당하는 꼴을 본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 스멀거렸다. 


그 뒤로 심바는 내 감시가 소홀해지는 순간을 노려 아기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 갠 것을 정리하러 방에 들어가는 틈을 타서 아기에게 다가갔다. 이유식을 훔쳐먹었을 때처럼 발소리를 줄이면서.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아이들 둘 중 하나는 내 눈앞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며 심바를 감시해야 했고, 심바를 감시해 줄 사람(남편이나 친정엄마)이 없을 때는 화장실에 머리를 감으러 가지도 못했다. 심바가 한창 집착이 심할 때에는 대변을 볼 때 화장실에 심바를 데리고 들어갔다. 

 어른들처럼 피하거나 밀어내지 못하는 만만한 존재가 생겨서 좋았을까. 심바는 끊임없이 아기에게 마운팅을 시도했고 나는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 신경이 곤두섰다. 설거지할 때 설거지만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기와 강아지를 같이 키우기로 결정하고서 짖음, 털날림, 물림, 먹을 때 분리 등의 문제를 예상했었는데, 마운팅은 내가 예상했던 문제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 아주 부족하다. 아기에게 마운팅을 할 줄이야. 뾰족한 해결 방법은 없었다. 심바가 어렸을 때 못하게 하려고 했던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었다. 그냥 우리가 피해 다니면 되는 것이었는데, 아기는 피할 수가 없다. 아직 걷지도 못하니까. 심바보다 힘이 약하니까. 내가 계속 지켜보고 감시해야 했다. 



다정해 보이지만 나는 경계하고 있는 상황



한두 해쯤 지난 뒤 아기가 좀 자라고 나니 심바가 마운팅을 시도할 때 밀어낼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심바는 수틀리면 물 수도 있는 강아지라 아기가 심바를 미는 것도 염려가 되었다. 아기에게 심바를 밀지 말고 그냥 팔을 뺀 뒤 엄마를 부르라고 했다. 이렇게 몇 번 아기가 마운팅을 피하는 경험을 하더니 심바의 집착이 좀 사그라들었다. 내가 없어도 아기 스스로 방어가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나 보다. 

 하지만 심바는 여전히 종종 아기에게 마운팅을 시도한다. 이제 나는 아기 근처로 가는 심바의 걸음걸이만 봐도 마운팅하러 가는 것인지 알아챌 수 있다. 발톱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걷는 짐승(?)의 움직임이다. 게다가 곧바로 달려들지 않고 아기 근처로 다가가서는 내가 보고 있는지 스윽 돌아본다. 그리고 나랑 눈이 마주치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돌아서서 딴청을 피운다. 그러는 꼴을 쭉 지켜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심바가 마운팅하고 있는 장면을 보면 아직도 나는 내 딸이 성추행당하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심바에게 큰 소리를 치고 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애개육아, 산책은 이렇게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