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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Dec 03. 2019

piece/네 손길보다 내 그림자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층에는 경복궁을 내다보는 유리문이 있다. 비가 세차게 오던 날, 화장실에 들렸다 나와서 너를 기다리며 그 문을 통해 길 건너 돌담을 바라보았다.


기와지붕이 비를 머금고 먹물처럼 뭉근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등을 돌리고 서있어도 너는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문자로 어디라고 연락하는 대신 속절없이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꾸만 '혹시'를 믿고 싶어서.


음악보다도 시끄러웠던 침묵이 흐르던 차 안,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눈물을 몰래 닦아내던 나라는 걸 너는 '혹시' 몰랐던 게 아닐까. 

서로의 눈을 보기가 버거워 그림을 보러 온 게 아니라면, 네가 '혹시' 먼저 손 내밀지 않을까.

이따금 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살짝 돌리면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일관된 건 두 가지. 계속 내리는 비와, 머리 위 전등 빛을 타고 태어나 내 발 밑에 웅크린 그림자. 

그 그림자는 내 움직임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도 결코 내 발께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을 기다리다가 문득, 네 손길보다 내 그림자가 더 든든해졌다는 걸 알았다.

내게 오지 않는 네게 한참 동안 약한 등을 내보여도, 결국 네가 아닌 내 검은 아이가 나를 지킨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숨유리문에 묻다. 

뒤를 돌아보니 넌 저 멀리서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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