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공방 Dec 17. 2019

pieces/ 혼자만의 물

D는 유독 샤워 관련 용품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샴푸는 에이솝에서, 바디 워시는 러시에서. 가끔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비싼 비누도 사고.

택시 한 번 타는 비용도 아까워하는 애가 이런 데엔 관대한 것이 신기하여 이유를 물었다.


"하루 중 샤워하는 시간만이 유일한 내 시간 같아."


과연, 하고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D는 하루에 13시간을 일하는 직종에 종사한다.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시간 외에는 항상 회사의 일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사람이고, 그때마저도 혼자 있지는 않는다. 끝없이 타인들에게 둘러싸여 '내 생각'을 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환경.

그런 그에게 집에 도착해서 뜨거운 물 밑에 서있는 시간은 한없이 소중할 수밖에.


그렇게까지 버겁게 일하지는 않는 나에게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샤워할 때 흐르는 모든 것은 나만의 것이다.

물, 시간, 생각, 거품 다.

그 시간을 고급스러운 향기와 감촉으로 채우는 것은 매우 가치가 있다.


- 라는 것을 떠올리며, 에이솝 바디 워시를 샀다는 이야기.

작가의 이전글 pieces/ 사진을 찍을까 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