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공방 Dec 19. 2019

드롭 리드 테이블이 사고 싶다

출처: vinterior.co

평소에는 평범한 캐비닛인 듯한데 상판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책상이 되는 드롭 리드 테이블(drop lid table)이 사고 싶어 졌다.


지금 도쿄에 혼자 살고 있는 집에는 수납공간이 별로 없다. 아니 공간 자체가 별로 없다. 8평 남짓한 내 방에는 커다란 테이블과 퀸 사이즈 침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 테이블 위에서 밥 먹기 일하기 글쓰기를 한 번에 해결한다. 며칠 청소를 잊고 살다 테이블 위를 보면, 내 생활의 자그마한 흔적들이 테이블 여기저기 몸을 말고 있다. 성냥, 리모컨, 티스푼, 건전지, 티백 쪼가리, 핸드폰 케이스, 책갈피 등등.


그 너저분한 책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만 커다란 상자에 모든 것을 때려 넣고 테이로 봉해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뭐랄까, 정해진 제 위치 없이 덩그러니 있는 것들은 항상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중 친구와 호텔에서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인테리어 가구점에서 하는 호텔이라 방 안이 자사 상품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제일 든 것이 드롭 리드 테이블이었다. 웬만한 물건들은 아래 달린 서랍들에 쓸어 넣으면 된다. 상판을 내려서 책상으로 고정시키고 나면 눈 앞도 허전하지 않게 벽으로 막혀있는데, 시야가 차단되니 뭔가 아늑하다. 원래 캐비닛이었던 가닥을 살려 책상으로 내린 상판 안쪽에도 여러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책이나 잡지를 꽂을 수 있는 세로로 긴 부분과 열쇠 등 작은 물건들을 담을 수 있는 직사각형 상자들이 적절하게 나누어져 있고, 맞춤으로 짜인 멀티 어댑터가 우측 구석을 알차게 차지하고서 푸른 램프와 스피커를 물고 있다.


나는 가방 안의 잡동사니들을 꺼내어 이 재미있는 수납공간들에 나누어 넣으면서 한참을 즐거워했다. 평소에 그저 어딘가에 "올려두는" 아이들을, 알맞은 위치에 "넣어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것을 테트리스 블록처럼 맞춰 넣고 나서는 그 앞에 앉아 글을 써보았다. 정말 무섭도록 집중이 잘됐다. 눈 앞이 캐비닛의 안쪽 벽으로 막혀있어 쓸데없이 나를 현혹할 창문 밖 풍경도, 치워야 할 살림살이도 보이지 않는다.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잡동사니는 하나도 올라와있지 않지만 무언가 필요하면 앉은자리에서 손만 뻗어 서랍을 열면 된다. 상단에 위에 올려둔 스피커의 진동이 나무를 타고 내 팔꿈치로 전해져 음악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루이보스 티까지 우려서 구석에 놓아두니, 나의 세계는 드롭 리드 테이블 하나로 완벽하게 충만했다.


그렇게 한 오전을 그 앞에서 보냈다.


알차게 글쓰기 시간을 가진 후에는 고정 장치를 풀고 상판을 들어 올려 다시 캐비닛 형태로 돌려놓았다. 그러고 나니 내 소우주를 담고 있던 라이팅 테이블이 순식간에 평범한 서랍장인 척하며 멀뚱히 서있는 것이다.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마치 세상 미친놈인 친구의 정숙한 결혼식 버전 같지 않은가.


나중에 한국에서 독립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내 방에 (웬만하면 서재에) 드롭 리드 테이블을 놓아두리라. 한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가구를 잘 팔지 않고, 해당 호텔에서도 너무 옛날 모델이라 이젠 구할 수가 없다고 했지만 - 필요하다면 목공을 배워서라도 만들어내고야 말겠다. 깔끔함, 실용성, 그리고 어딘지 모를 로맨틱함과 이중 매력을 갖춘 가구의 발견으로 이렇게 또 갖고 싶은 물건이 늘고야 말았다.

작가의 이전글 pieces/ 혼자만의 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