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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Dec 22. 2019

데미안이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quotes #책영업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처음으로 완독 했다. 어릴 적부터 영어 원서 읽기가 취미였던 내가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데미안]을 스물여덟의 나이에 처음 접했다는 것이 나도 새삼 신기하다. 항상 집에 있는 책이었지만 앞의 몇 챕터를 읽다가 도저히 나아가지 못하고 내려놓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마음을 다잡고서 이제는 종이가 노랗게 바랜 책을 가지고 비행기에 탔다.


내게 여행 중 가방 안에 넣어둔 책은 '반드시 읽겠다'라고 마음먹은 것이다.

인터넷과 익숙한 모든 것들로부터 차단된 환경에서 읽은 데미안은 '과연 명작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로 좋았다. 웬만하면 책에 아무 표시를 남기지 않는 내가 연필을 찾아들어 밑줄을 긋고 파생되는 질문들을 책 구석구석 가득 적어놓을 정도로.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생긴 고민들을 안고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제야 이 책이 주는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다. 본인만의 길을 찾으려 헤매고 애쓰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표지판이 별 의미가 없지 않은가.


언제나 그렇듯 줄거리는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며, 오늘은 단지 내게 특히나 여운이 남는 문구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자의적인 번역/해석 주의)


I wanted only to try to live in accord with the promptings which came from my true self.
Why was that so very difficult?

나는 단지, 내 진실한 자아로부터의 부름에 맞추어 살아가고 싶었을 분이다.
그것이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헤세 선생님은 시작 전에 위 문구를 보여줌으로써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을 쿡쿡 찌를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자아의 부름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는가? 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는가? 그것에 따라 살아가 보려 했는가?

 





Everyone goes through this crisis. For the average person this is the point when the demands of his own life come into the sharpest conflict with his environment…. Many people experience the dying and rebirth - which is our fate - only this once during their entire life.... Very many are caught forever in this impasse, and for the rest of their lives cling painfully to an irrevocable past, the dream of the lost paradise…

모두가 이 위기를 겪는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때가 바로 자기 인생의 요구들이 본인이 처한 환경과 가장 극렬하게 충돌하는 시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유일한 이 시점에 - 우리의 운명인 - 죽음과 재탄생을 경험한다....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교착 상태에 평생 남아있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남은 인생을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천국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 혹은 시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데미안에게는 그 시점이 비교적 어릴 때였지만, 성인이 되고 혹은 노년기에도 올 수 있는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욕구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것과 충돌되는 외부 환경과 맞서서 의식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때. 내 안을 들여다봤고, 내가 누구이기로 결정을 했고, 편안하고 순진한 과거에서 벗어나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때.


내게는 그때가 온 걸까, 지나간 걸까, 아직 먼 걸까.




“We talk too much,” he said with unwonted seriousness. “Clever talk is absolutely worthless. All you do in the process is lose yourself. And to lose yourself is a sin. One has to be able to crawl completely inside oneself, like a tortoise.”

"우린 말을 너무 많이 해." 그가 뜻밖의 진지함을 담아 말했다. "똑똑한 체하는 대화는 전혀 가치가 없어.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을 뿐이야. 그리고 너를 잃는 것은 죄라고. 사람은 마치 거북이처럼 완전하게 자기 안으로 기어들 줄 알아야 해."


살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어왔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내 안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 내가 '나'를 알기 위해 끝없이 침잠한 시간은 끈질기고 길다. 스스로에 대한 경멸로 울면서 글을 쓰던 밤들도 많았고, 작곡을 하다 완벽한 환희를 느끼며 아 이것이 내 주관적 행복의 경지이구나 라며 기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내 속을 잘 파악하고 있냐 하면은 그렇지도 않다. 또 어릴 때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내가 차오르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별것도 없는 나를 포장하며 속을 퍼내서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별 생각이나 고민 없이 살고 싶기도 하고 - 완벽하게 거북이가 되고 싶기도 하고. 어쩌면 좋을까.




I was incapable of giving advice that did not derive from my own experience and which I myself did not have the strength to follow.

나는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고 나부터도 따를 자신이 없는 충고를 주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입만 산 충고쟁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문구이지 않은가.




“You must not give way to desires which you don’t believe in. ...You should, however, either be capable of renouncing these desires or feel wholly justified in having them."

"네가 믿지 않는 욕망에 휩쓸리지 마.... 욕망들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하거나, 그 욕망을 가진 것에 대해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해."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구였다. 자신이 믿지 않는 욕망에 굴복하지 말라. 사람들에게는 많은 욕망들이 있지만, 그중 대다수가 "진짜 욕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저 사회적인 압박 때문에 좇는 것이거나,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더 깊게 고민하여 근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보다 쉬운 옵션이기 때문에 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욕, 수면욕, 성욕, 상승욕, 명예욕 등등 - 세상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많은 욕망들 중에서 진정한 "나의 것"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스물아홉의 나는 무엇을 욕망할 것인가? 오랫동안 미뤄왔던 음악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가? 그보다는 사랑이 하고 싶은가? 서른이 가까워지니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나의 '욕망'이 맞는가? 승진 시즌이라고 하니 그것을 좇아야 하는가?


정답은 없다. 그저 뻔뻔하고 당당하게 이것이 내 욕망이다,라고 솔직해질 수 있는 그 대상을 특정한 후에 그에 집중해서 살아가면 그뿐.




An enlightened man had but one duty - to seek the way to himself, to reach inner certainty, to grope his way forward, no matter where it led. ...Each man had only one genuine vocation - to find the way to himself.

결국 깨우친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의무밖에 없다 -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 내면의 확신에 도달하는 것, 어디로 가든 앞으로 헤치고 나아가는 것.... 사람에게는 오직 한 가지 진실한 소명이 있는 것이다 - 자기 자신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


소설 [데미안]은 내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너로 향하는 길을 찾으라고. 사회가 강요하는 책임과, 네가 진실로 욕망해야 하는 것을 혼동하지 말라고. 너의 길을 제한하지도 말라고. 현실에 잘 적응하되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타협하지는 말라고. 자기 자신이라는 기계를 잘 조작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본인을 잘 안다는 자신감을 기반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나는 꽤 오랫동안 데미안이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외롭고 힘들다. 대체 내 이 수많은 상처와 콤플렉스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내 실수들은 어떻게 해야 반복되지 않을 수 있는지, 내 통제 범위 밖에서 오는 공격들은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지 등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사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다. 하지만 내실 공사가 덜 된 상태로 밖으로 나돌면서 내가 자꾸 깎여나간다는 것을 인지했다. 타인의 욕망과 내 욕망을 자주 혼동하여 그 욕구가 성취된 후에도 찝찝하고 불행한 나를 발견했다. 내가 해왔던 '사유'가 자기 정당화와 과거에 대한 후회에 대부분 묶여있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은 - 당시에는 필요했지만 - 나로 향하는 길이라기보다는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방향을 틀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많은 두려움과 후회에 묻혀 잘 보이지는 않지만 - 분명히 존재할 길의 시작점을 찾아 끌어올린다. 탄탄한 나만의 여정을 시작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정신적 지주 니체 선생님의 말마따나, 극복을 위해 파괴하며 나아간다.


어려운 길일 것이 뻔하지만 내가 오직 나를 위해 욕망하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뭔가 마음이 가볍다.

더 이상 데미안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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