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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Jul 03. 2019

스무 번 넘게 읽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소설 #quotes #책영업 

평생 한 작가의 책만 읽을 수 있다고 하면 난 망설임 없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를 선택할 것이다. 그의 모든 에세이, 시, 그리고 유일한 소설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 매우 흥미롭고 수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리 포터 이후 처음으로) 나를 영문학에 푹 빠지게 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입덕의 계기가 되는 것은 영원히 소중하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 바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다. 나는 이 책을 각기 다른 표지로 네 개를 가지고 있고, 스무 번도 넘게 읽었으며,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을 받고 새로이 서평을 쓴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추잡한 면모를 일면 아름답게 포장하여 서술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방심하고 읽다가 허를 찔리고 만다. 미모의 여배우가 내뱉는 독한 말들이 오히려 더 아프게 와 닿는 것과 유사하다. 


오늘은 매번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소설 속 문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리 말하자면 내 의도는 소설의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문구들을 소개함으로으로써 독자가 직접 책을 사서 읽고 싶게끔 만들고자 한다.


(직접 번역한 만큼 개인적인 해석의 향이 다소 짙을 수 있다.)




The Picture of Dorian Gray

Oscar Wilde


You never say a moral thing, and you never do a wrong thing. Your cynicism is simply a pose.

당신은 결코 윤리적인 소리를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아. 당신의 냉소적임은 그저 흉내일 뿐이야.


이 말은 소설의 주인공인 도리안 그레이가 친우인 헨리 워튼 경에게 하는 말이다. 헨리 경은 그야말로 '입만 산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변과 처세에 능하며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서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재미로 살아가는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는 - 모든 인간이 그렇듯 - 추악한 면모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아주 다채롭고 매력적이다. 그들의 대사와 행동을 곱씹어볼수록 그들과 비슷한 인간군에 대해, 혹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나라면? 그라면?




William Blake - The Temptation and Fall of Eve (1808)


But the bravest man amongst us is afraid of himself.... Every impulse that we strive to strangle broods in the mind, and poisons us. The body sins once, and has done with its sin, for action is the mode of purification. The only way to get rid of temptation is to yeild to it.

하지만 우리 중 가장 용감한 자야말로 본인을 두려워할 거야.... 우리가 억누르려고 애를 쓰는 모든 충동들은 머릿속에서 곱씹어지고 마침내는 우리를 오염시키지. 육체는 죄를 한 번 저지르고 나면 그 죄로부터 자유로워져 - 행동이야말로 정화의 방법이기 때문이야.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그야말로 무책임한 말들의 향연 아닌가. 아니 그럼, 무언가를 훔치거나 누군가 해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인 것인가? 바람피우고 싶으면 피고, 마약 하고 싶으면 하고? 자 일단 진정해보자. 나는 위 문장을 미국 헌법에서 주지하는 표현의 자유와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뭐든 네 멋대로 해라'가 아니라,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을 좇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정도로 말이다. 동성애는 죄악이었고 허용되지 않은 예술은 쓰레기였던 오스카 와일드의 1870년대 영국 시대상에서 쾌락과 문학은 '나쁜 충동'으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형태의 억압은 모든 시대에 있어왔다.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일견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도 - 주류 문화, 사회적 시선, "~해야 해"하는 으레의 기대치, 날 때부터 등에 지워진 다양한 짐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이는 없을 것이다.


나만해도 보수적인 집안의 큰딸로서 공부 외의 다른 열정을 좇을 세도 없이 스물몇 해를 잠자코 살아왔다. 독립한 후에야 숨겨왔던 열망들 -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곡을 쓰고,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 읽고, 애정 하는 사람과 침대를 공유하는 것 등 - 을 실현해보고 있다. 어떻게든 나를 유혹하는 충동들에 패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애를 썼던 나에게, 책임감보다는 나를 간지럽게 하는 욕망들에 솔직해져보고자 했던 나에게, 저 문장은 일종의 해방의 계기였다고나 할까.



 

Egon Schiele – The Poet (Self-Portrait) (1911)
Good artists exist simply in what they make, and consequently are perfectly uninteresting in what they are.

훌륭한 예술가는 그들의 창작물 속에 존재할 뿐이다. 때문에 그들은 사람으로서는 완벽하게 지루하다.


헨리 경은 이렇게 다시 한번 또 무례한 말을 내뱉고 만다. 또 그에 따르면, 이류 시인은 오히려 본인이 쓰지 못하는 시를 인생으로 살아내기 때문에 지독히도 흥미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일 수 있지만,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며 크게 한 번 웃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니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창작물은 일류인가.' 사실 예술에 급을 메기는 것도 참 웃긴 일이라 쓸데없는 고민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청중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 창작자들의 특징인 듯하다.


이 문장을 읽은 나는 '에라' 하고는 그 짐을 툭 벗어던져버릴 수 있었다. 내가 일류 작가라면, 혹은 일류 작곡가라면, 그 자체로 기뻐할 일이다. 내가 이류 혹은 삼류라면 - 나는 아주 흥미로운 인간일 것이다. 예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품은 채 살아가거나, 그와 비슷한 것을 실행해나가며 살아가는 것 자체로 매력적인.


사족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하니 이후로는 잠자코 내게 와 닿은 책 속 문장들만 나열해보겠다. 





She was free in her prison of passion

그녀는 열정의 감옥 안에서 자유로웠다.



 

Children begin by loving their parents; as they grow older they judge them; sometimes they forgive them.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랄수록 부모를 평가하게 되고; 가끔은 용서한다.

 


 

“He wants to enslave you.”
“I shudder at the thought of being free.”

"그는 너를 가둬두고 싶어 해."
"자유로워진다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져."



 

There is luxury in self-reproach. When we blame ourselves we feel that no one else has a right to blame us.

스스로를 책망하는 데에는 일종의 사치스러움이 있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을 동안에는 다른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느껴진다.



François Boucher - Madame de Pompadour (1756)

 

There is no such thing as a moral or an immoral book. Books are well written, or badly written. That is all.

세상에 '도덕적인 책' 혹은 '부도덕한 책'이라는 것은 없다. 책은 잘 쓰이거나 못 쓰이거나 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

 



All art is at once surface and symbol. Those who get beneath the surface do so at their peril. Those who read the symbol do so at their peril. It is the spectator, and not life, that art really mirrors.

모든 예술은 표면임과 동시에 상징이다. 표면 밑으로 도달하는 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간다. 상징을 읽는 자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한다. 예술이 실제로 반영하는 것은 인생이 아니라 관찰자이다.


 



이 글이 독자로 하여금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책에 흥미를 갖게 하였다면 성공이다. 언젠가는 오스카 와일드 본인의 수많은 명언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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