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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Nov 27. 2019

창의력 슬럼프 극복: 무엇이라도 발행하고 보자


우리들은 익숙한 것, 즉 의식주에 대한 것을 너무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나친 경우에는 살기 위해 먹고, 정욕 때문에 아이를 낳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런 사람들은 일상의 대부분이 추락하여, 뭔가 고상한 삶이란 자신과는 다른 머나먼 세계에 있는 양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인생의 토대를 확고히 지탱하고 있는 의식주라는 생활을 향해 진지하고 흔들림 없는 시선을 쏟아야만 한다. 더욱 깊이 사고하고, 반성하고, 개선을 거듭하여 지성과 예술적 감성을 생활의 기본에 드리워야 한다.

의식주만이 우리를 살리고 현실적으로 이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니체, 방랑자와 그 그림자 중


나는 뭘 발행하기가 부끄럽다

어릴 적부터 글은 미친 듯이 썼지만, 여태껏 브런치에 올린 글 네다섯 개 빼고는(그마저도 몇 개는 발행 취소를 했다) 한 번도 공표(publish)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가사까지 다 마련된 곡들을 수 백개 쌓아놓고는, 멜론은 커녕 사운드클라우드에도 올리지 않았다.


나를 가로막는 건 아마 완벽주의부끄러움일 테다. 대작이 아닌 책은 내고 싶지 않다. 높은 퀄리티의 음반이 아니면 내 이름을 걸기 싫다 - 같은 고집. 그와 동시에, 문득 꺼내어 보는 내 글과 음악의 수준이 머릿속에 설정된 이상적 기준에는 한참 못 미쳐서 그만 한숨만 푹 내쉬며 그것들을 다시 서랍에 처박고 마는 것이다.


어릴 때야 내 안에 이야기가 넘쳐 누가 보건 말건 창작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나이가 좀 들고 나니 뭔가가 다르다. 내 에너지의 대부분은 일에 쓴다. 나머지는 이성, 친구 그리고 가족에게 쏟는다. 그리고 나서야 팍팍하게 남은 "내 시간" 영역을 창작에 쓰는데, 그 결과물들이 어디 갈 생각도 않고 자꾸 내 안의 구멍으로 몸을 숨기면 그 시간이 참으로 헛헛해진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던 시절엔 그 구멍을 들여다보느라 잠도 못 잤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 안이 궁금하지가 않다. 내가 나에게 예전만큼 적극적인 청자가 아니게 된 것이다. 사고가 어떻게 흐를지, 내 소설 속에 내가 어떤 반전을 가미할지 대충 다 알기도 하고, 그냥 힘이 딸리기도 하고.


친한 언니가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이러한 고민들로 창의력에 슬럼프가 온 가을, 친한 언니가 브이로그를 시작했다. SNS 활동도 뜸하고 그다지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 언니가 제 일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겠다는 말에 놀라 이유를 물었다.


 "돌이켜 보니 나 이번 연도를 진짜 열심히 놀았더라고. 여름 축제들도 가고, 스키도 타고.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잘 기억이 안 나. 언제 어떻게 신났고, 뭘 하면서 웃었는지. 나 혼자만 기억하는 건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 같아. 모두가 봐줬으면 좋겠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공간에 기록하고 싶어. 그러면 더 신나게 놀고, 알차게 기억할 것 같아."


나는 그야말로 격하게 공감했다. 그러니까 비유를 하자면, 내가 최근에 어여쁜 장미를 샀다고 치자. 이걸 굳이 열 가지 각도에서 찍고 빌보드 광고로 만들어 자랑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오다가다 볼 수 있는 창가 화병에 넣어두는 정도는 하고 싶은 거다. 그래야 그 장미한테 한 번 더 물을 주고, 먼지가 쌓이면 털어주고, 화병도 좀 예쁜 걸 살 것 같은 마음.


니체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는 창작을 아주 고상한 무언가로 정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짧은 생각이라 다소 부끄럽지만 서점에서 에세이집이나 여행기를 들춰보며 "이런 소소한 것까지 출판을 해?"하고 놀라워하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 저자들은, 타인들에게 나누는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일상과 여행을 얼마나 면밀히 들여다봤을까. 매 순간을 얼마나 짙게 경험하고, 다양한 감정의 층위를 느꼈을까. 뭔가 대단한 구절을 써서가 아니고, 기가 막히는 멜로디를 만들어서가 아니고, 내가 방금 마신 차가 평소보다 잘 내려져서, 동행과 걸은 낯선 도시의 공원이 왠지 익숙해서, 그걸 기록하고 또 전하고 싶어져서 얼마나 기뻤을까. 그들은 그렇게 소담하게 예술에 한 발자국 다가선 것이다.


내 하루가 곧 예술이 될 수 있게

언니를 따라 하루 종일 브이로그를 찍으며 다녀봤다. 괜히 시놉시스를 쓰고, 앵글을 잡아보고, 편집점을 찾고. 그랬더니 모든 것이 프레임이더라. 낙엽을 밟으며 걷는 두 발, 택시 창문으로 보는 풍경, 좋아하는 카페의 LP 플레이어, 책을 필사하는 언니의 모습, 탱글탱글한 부추 교자, 다 유의미한 장면이더라. 그날 밤 뚝딱 편집을 마치고 처음 업로드해본 영상의 조회수 중 90%는 우리 둘이겠지만, 그래도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내 매일의 생활 속으로 예술을 초대할 것이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겁내지 않고. 내 의식주를 충실히 반영한 글들을 쓰고 아무리 멋없더라도 발행할 것이다. 엉망진창인 단편 소설도 몇 개 내고, 공모전에 참가했다 떨어져도 보고, 사운드클라우드에 쓰다 만 곡을 올리고, 노래하는 친구와 커버곡 부르는 채널을 열고 그래 볼 거다. 내 안에 반짝이는 것들이 먼 우주만 그리다 그 빛을 잃지 않도록. 매일의 삶에 내가 충실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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