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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방진 백조 Jan 29. 2022

백지의 기적

Dreamers dream many Dreams

“어? 너. 너...”

저벅저벅 허락도 없이 들어와 자기 집인 마냥 거실 소파에 철퍼덕 드러눕는다.

(어랍쇼?)

“야! 나 지금 진짜 바쁘거든. 너랑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 빨리 나가아~”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비트만 타고 있다.  

아픈 건 내 입이요. 느긋한 건 저 녀석이다.

자리 잡고 누운 폼을 보니 바로 나가긴 글렀다.

‘우띠’ 째려보다가,  

“짜식,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핸드 소독 젤이라도 바르고 누워라~. 야!”

조금 곁을 내줬더니, 이때다 싶었는지.


시작된다. 일장연설.


네가 나를 언제부터 품었느냐면.

네가 나를 언제 내쳤느냐면.

원래 네가 나를 왜 좋아하게 되었느냐면.

네가 나를 멀리했을 때가.

네가 나를 일방적으로 돌아섰을 때가. 어땠느냐면.  


네가 조잘대는 동안 난 참 많은 상념에 빠진다.


어쩌고저쩌고...

내게 들리는 너의 소리.

‘우우우우~웅. 웅. 우우~웅---’ (사운드 0)


우~웅 거리다가, 갑자기 '화아아왁' 소리 커지며,

날카롭게 꽂히는.

이렇게라도 찾아와 주는 걸 고맙게 여겨!’ (사운드 10)   


언젠가부터 내 안에 스며들어있던 너.

네가 뭔지도 모르면서 쫓던 날들.

너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했던 나날들.

너를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들.

너 같은 거 필요 없다고.

사실 너는 내게 큰 가치도 행복도 아니라고.

너의 모습 같은 거 이젠 희미해졌다고 말하려다가.

너 같은 거 이젠 내 인생에 큰 의미 없다고 말하려다가.  

너 같은 거 이젠 무시하겠다고. 말하면서...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당황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앞에 바짝 와 선다.

‘나 좀 봐봐. 똑바로 봐봐’라고 하는 녀석.  

고개를 쳐들어,

이제야 가까이서 보니,


나, 너를. 어디선가.., 이미 많이 본 것 같다.


내가 고개 숙이고 힘들어할 때.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을 때.

주저앉고 싶고,

도망칠 곳이 없었을 때.


그때. 너를,

나를 보고 있던 너를,

본. 것. 같다.  


너는... 꿈.

나의... 꿈.


너였구나!


꿈은 -

피식 웃더니

‘좋은 꿈 꿔’의 ‘꿈’이 아니라,

‘Dreams come true’ ‘꿈’이라고 콕 집어 알려준다.


넌 위대한 작가가 될거야   -   작가 되기 싫어
영화 <스탠 바이 미>   / (left)소년시절 리버 피닉스 뒤통수

#


진동소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오올~ 언니이~’ ‘오랜만 잘 지내’ 어쩌고 잠깐.

“건백아. 너 스페인어 할 줄 알지?”

(띠로리~~~~)

“아.... 가고 싶네요. 스페인” (헛소리) 맥 놓은 지가 어언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요. “

“그래? 에이...”

“왜 그러는데?”

“나 정말 바빠.”

(갑자기?)

질문에 답 않고 지 하고 싶은 답을 해도. 결국 다 알아듣고. 노선을 다시 잘 타고 들어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우리.

학교만 6군데 나간단다. 애들 스마트폰으로 영화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오오오,, 겨엄~~~ 역시. 뭐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지~”

“어. 그리고 또 내가 무슨 회사를 차렸었거든. ”

“오~~ 올 대표 대표!”

“매출이 그래도 연 3천”

“오오~~ㄹ~대단 대단!”

“그런데 뭐 신고를 안 해서 남은 돈은 하나도 없어. 큭큭.

 그리고 또.. 뭔 스님이 무슨 영화를 만든다고 내게 투자를 하겠다고 해서.”

“뭐? 뭔 스님이 수행을 안 하고 투자를 해!”

말해놓고 서로 웃겨서 깔깔깔.

“본인 입적하기까지의 이야기신가?”

근황 역시 신선하다.

또 다른 얘기를 하다가 전화한 목적을 잃어버린 둘.

언니 그런데 아까 왜 물어본 거야?”

“아, 뭐라고?? 아!”

(이제야 앞으로 돌아왔다)

“예전에 만든 단편이 영화제에 초대돼 갖고.

나라는 도미니카 공화국인데. 내일까지 작업해서 보내야 된다는데...”

"뭐??? 전화 빨리 끊어! 지금이 노닥거릴 때야?!!!

도미니카고 하모니카고 무조건 해! 끊고 빨리 프리랜서 번역가 구해! 프리랜서 찾는 앱 빨리 설치하고!

Right Now, 롸잇나우! 롸잇나우!"

“어? 어어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뚝.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개운하다. 오랜만의 이런 통화.

여전히 갈 길도 어렵고, 방향도 모르겠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이런 대화.

이런 생동감이 좋다. 살아있다.

가난하고 힘들지만. 이상하게 낭만적인 이 통화가 좋았다.

낭만은 밥을 먹여주지 않지만. 말이다.

마음을 꽉 차게 해 준다.


겸.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든다. 투잡, 쓰리잡 알바를 하면서 기어이 영화과 석사학위를 땄다.
4년 전인가? 영화 찍던 중. 밤에 앞을 안 보고 뛰어가다가 튀어나와있던 보도블록 벽돌에 얼굴을 받혀. 한밤중. 응급실에 있다고. 내게 와줄 수 있냐고 전화. 병원 응급실을 끔찍이도 무서워하는 내가, 택시 타고 한걸음에 뛰어갔던 적이 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하여간 뭐든 열심히인 악바리 언니.
밝고 재미있다.  

     


#

     

아끼는 나의 벗(友). 주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주는 글을 쓰는 사람, 작가다. 계약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는 나도, 덩달아 애가 탄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예쁜 이름을 갖고 있는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명(無名)인 적이 없었지만, 작가의 pay 문제와 연관하여 저쪽에서 ‘당선작가니 아니니’ 하는 것을 들이대면 ‘아.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당선돼 주고 말지.’ 하며 마음에 난 기스를 어루만질 때도 있다. 나이가 들면 이런 문제도 '능숙하고 멋있게. 고상하고 있어 보이게.' 처리하게 될 줄 알았더니. ‘정당한 대가를 제때에 받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라고 말하게 되는 현실이 더 부지기수다. (아.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 한바탕 까댈 준비가 되어 있다. 까자! 까대자! 까대 보자! 네가 1의 강도일 때, 내가 10까지는 거뜬히 호응해줄 수 있다.

상황의 논리적 해석은 제쳐둔다.

무조건 네 말이 맞고, 무조건 난 너의 편이다.

훌쩍 던져진 세상에 나를 무턱대고 믿어주는 사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주에게 영원히 그런 사람일 것이다.  


"아 진짜 바보 아냐? 이쪽에 오래 있던 사람도 아니잖아. 유치하다 유치해. 돈이나 제때 달라고 해!" (깔깔깔)


답도 없는 얘기들. 시원하게 유레카! 라고 외치지 못해도,

전화기를 붙든 채, 함께 '이 밤의 끝을 잡고' 있을 때 서로에게 힘이 된다. 그냥 통화만 해도 좋단다. 얘기를 하면서 '한바탕 웃음으로.' 그렇게 용기가 생긴다.

기어이 뭔가를 아무거나 라도 쥐어주고 싶은 친구,

그 친구가 주였다.
 

결국, 남 흉보는 것을 좀 하다가, 이내, 아니다. 뭐 그것은 또 그 사람 이해도 된다.이러면서. 둘이 또 괜히 나쁜 말 하니까. 기분만 처진다는 둥. 세상 천사 같은 마무리로 훈훈한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왜 이노무 글을 쓴다고 해서 허리만 나가고, 맨날 앉아만 있으니 살찌고. 돈은 못 벌고. 서로 깔깔.


그러나, 통화가 깊어질 때면, 여지없이.

내가 사랑하는 친구. 주는,

이렇게 나를, 우리를 다독여준다.

읊조리듯.


그래도 좋은 거 아니냐?
 글을 쓴다는 것은

                               주가 말했다.


우리, 서로를 기대하자.  

                               내가 말했다.  


별빛 달빛 같은 낭만어린 주와의 대화.

주와 나는 서로의 꿈을 기대하기로. 기대한다.


주. 드라마를 쓴다. 애니메이션, 웹툰 스토리도 쓴다. 나의 인연들 중 배려심 있고 어진 것으로 치면
베스트 3안에 든다. 깊이 있고 지적인 대화가 가능. 새벽 3시에 그녀의 집에서 듣던 거문고 산조 음률,
폴란드 시절 이야기. 같이 먹은 혜화동 가지 꼬치와 새벽녘 청진동 해장국.
술을 많이 마셔서 걱정이라 했더니 예수님도 분명 와인을 많이 드셨을 거라며 성경에서 술 예찬 구절을
찾아서 보내줬던 다정하기 그지없는 나의 애우(愛友).
한결같이 따뜻하다.


# 겸과 주, 나.


신촌.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저녁 술에서 새벽 6시 순댓국, 7시 해장 커피까지.   

파란만장 했던 시간 속에

새파랗게 꿈꾸던,

날 것의 우리가 있다.


*

겸 언니, 주야.

그때 기억나?

우리 영화제 시상식에 드레스 (큭큭) 뭐 입고 갈지 얘기했잖아.


난 완전 멋있는 슈트 입을래. 모자까지.

난 완전 드레스 너무 길어서 막 끝도 없는 거.

난 완전 가슴 퐉뽝 드러나는 거.


네가 잘되면 내가 좋고.

내가 잘되도 나를 축하해줄.

사랑하는 나의 문우들.


따뜻한 어느 날, 반갑게 겸주하세.
겸주(兼酒)




글을 쓰는 것은 어렵다.

영화 만드는 것도 어렵다.

난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다.

그런데도 써보겠다고. 만들겠다고.

꿈꾼다.

     

백지가 내 밥이 되고, 돈이 되고, 생계가 되고, 명예가 되고.

꿈이 되는 것.

나는 그것을 백지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낱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 다시 모여 문장이 되고 -  감정이 되고 - 눈물이 되고 -  환희가 되고 – 기쁨이 되는


그 기적들을.

우리는 ‘만들 것이다.’




" 아 그런데. 겸 앤 주! 시상식에서,

  아름다운 밤이에요! 

  이 대사는 누가 하기로 했지?

  나. 였던 것 같은데?! (^.~)



글은 우리의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Dreamers dream many dreams

by 건방진 백조


리버 피닉스 : 넌 훌륭한 작가가 될 거야!


♬ Stand By Me / Ben E.King

                             Stand B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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