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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분명, 누군가의 태양

3초 안에 있는 힘껏 고마워하는 방법

by 시야

얼마 전에 미친 듯이 좋은 카피를 봤다. 포카리 스웨트 재팬의 올해 광고였다.


땀은 흘러서 끝나는 게 아니야.
땀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너는 분명, 누군가의 태양

[2025, 포카리 스웨트]


열심히 하는 누군가를 보면 덩달아 열의가 생긴다. 뜨거운 태양은 차가운 땀을 흐르게 한다. 누군가를 보고 땀을 흘리고 싶어 진다면, 그는 본인에게 있어 태양이다. 한쪽만 태양이라는 법은 없어서 서로가 서로의 태양이 되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아도 말이다.


헤드카피가 나오기 전, 바디카피도 심하게 좋다. 땀은 흘러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땀은 당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 대학에서 온종일 느꼈던 사실이었다. 단 세 줄로 한 사람의 대학생활을 정리할 수 있다니 놀랍다.


또 반한 이유를 찾자면, 태양의 신선한 쓰임이다. 흔히 태양 하면 '빛'을 떠올린다. 별과 달처럼 빛나는 것들은 빛에만 몰두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선 태양의 열기를 말한다. 땀을 말한다. 그래서 흠뻑 좋았다.






고마움은 행복의 요건이라고 익히 들었다. 고등학교 진로시간에 나눠준 '행복'이란 책의 한 챕터는 '감사하기'였다. 무려 서울대 행복 연구소에서 쓴 책이다. 예전에 본 뇌과학 책에서도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낄 때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 행복감을 안겨준다고 했다. 행복한 삶을 논하는 종교(기독교 및 불교)도 감사를 강조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에 더 관련이 있다."
[다이너 루카스]


왜 고마움에 민감해지면 좋을까? 그만큼 행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날 불평불만 거리를 찾는 사람보다 감사 거리를 찾는 사람이 훨씬 행복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대체로 감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마워하는 데에도 방법과 기술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것에서 고마움을 찾으라지만 어딘가 작위적이었다. 예를 들어, 달릴 수 있다는 사실로 감사하는 일도 하루이틀이다. 두 다리로 지각을 면했거나, 겨우겨우 막차를 탔을 때나 진정성이 있다. 가만히 집에만 누워있어 놓고 '달릴 수 있어 감사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맥락 없이 감사를 위한 감사는 그저 구호에 불과하다.




이런 와중에 우연찮게 힘껏 고마워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를 테면 지속가능한 감사법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나로 있게 된 경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를 거쳐간 것들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지금의 나로 있을 보장이 없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어제의 태양을 인식한다. 이렇게 되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고마워할 수 있다.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느끼는 것. 그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느끼는 것. 그 문장을 읽지 않았으면 방금의 아이디어는 없었다는 것. 내게 저마다 확실한 흔적을 남긴 무언가를 두고 계기라 부른다. 포카리 스웨트는 그걸 태양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만난 친구들이 태양이었다. 선배들이 태양이었다. 뭐라도 주고 싶어 안달 난 부모, 교수, 강사, 롤모델과 같은 다양한 어른들이 태양이었다. 그들 덕에 내가 있다. 태양들은 내가 땀을 흘리게 했다. 태양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관점과 태도를 훔치고 싶어진다. 제멋대로 그들을 동경하게 된다. 나도 그들과 같은 태양이 되고 싶어진다.


물론 누구나 태양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내가 쓰는 글도 한 편의 태양이길 바란다. 나의 생각과 관점이 누군가의 땀방울에 일조하길 바란다. 꽤 괜찮은 글을 쓰고 나서는 뿌듯하다.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도 분명 있지만, 그보다 몇 배로 큰 희열은 '나의 태양과 닮아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동경했던 태양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또 나로 인해서 태양인 누군가가 더 뜨거워지겠다 싶을 때 기쁘다. 남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게 본인을 위해서라는 사람들의 말을 서서히 깨닫는다.


가끔씩 멈춰 서서, 지금의 나로 있게 된 까닭을 생각해 보자. 나를 툭 치고 지나간 계기를 떠올리자. 분명 벅차게 고마울 것이다. 오늘도 오늘의 태양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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