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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기

완벽주의보다 그냥주의자.

by 시야

완벽주의는 관성이 세다. 일을 시작하고서는 거장의 장인정신일지 몰라도, 주사위를 던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핑계만 안겨준다. 완벽주의란 시도를 두렵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걸음마를 못 떼게 한다. 도전하기 가장 알맞은 순간만 찾다가 죽는다. 목표에 자신의 성취가 미치지 못한다고 예상되면 문을 열지 않는다. 이렇듯 완벽주의는 결과를 예측할 때 시작된다.


때때로 우리는 대상에 권위를 잘못 부여한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의 상상으로 부풀린 상대의 몸집 앞에 지레 겁먹는다. 무엇이 되었든 본인을 압도하는 무언가 앞에서 떳떳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완벽주의자가 겁내는 건, 자신이 이룬 성취의 모자람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성취와 마주하기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간의 인식과 사실은 같지 않다. 착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그냥'으로 깨닫는다.


그냥이 완벽을 이긴다. 그냥은 겁먹지 않는 태도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공포를 키우지 않고, 쓰잘 떼기 없는 권위의 사족을 붙이지도 않는다. 또한 동화의 결말을 섣불리 짐작하지 않는 태도다. 그저 지금 맞닥뜨린 괴물 앞에서 칼을 빼어들 뿐이다. 그냥은 겁나지 않게 해 준다. 모든 시도 앞에 '그냥'을 이유로 붙이는 순간 그토록 커다랗게 보였던 시련은 하찮아진다. 전당포 주인처럼, 잘못 매겼던 권위에 헐값을 부여한다.


요즘 그냥이 화두다. 별생각 없이 하려한다. 잘해야 한다. 잘하고 싶다. 이런 강박들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냥 하는 거지. 뭐. 어떤 순간에도 용감해지고 싶다. 따라서 어떤 순간이라도 그냥 하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해 보면, 삶을 바꾼 건 결정적인 그냥들이었으니까. 삶은 언제나 겁먹지 않은 만큼 내어준다. 그냥 하자. 그냥 살자. 완벽주의자보다는 그냥주의자가 되겠다.


끝으로 이동진 평론가로부터 알게 된 알베르 카뮈의 말로 마친다.

원칙은 큰 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엔 연민으로 충분하다.


알고 보면 작은 일에 원칙을 낭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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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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