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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고기 많이 잡아와"

by 시야

폭싹 속았수다, 밥을 먹으면서 보기 힘든 드라마다. 잠시 숟가락을 놓게 만드는 장면이 하나씩 꼭 들어있다. 4화에서는 애순의 "고기 많이 잡아와"가 그랬다.


바다가 데려간 엄마처럼 자신의 어린 딸을 해녀로 키우겠단다. 그렇게라도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집안 어른들의 헛소리에 상을 엎어버리고 시댁을 나온다. 배는 곯아도 마음은 곯지 않게 해주겠다는 남편은 날마다 배를 탄다.


남편은 손가락 뼈가 부러지도록 그물을 당긴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오징어 잡이에 나선다. 애순은 '잠을 자야 산다'라는 말을 건네며 이른 새벽에 나서는 남편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옆에서 철없이 아버지에게 '오징어 백 마리' 잡아오라고 말하는 딸아이를 만류한다. 아빠가 꼭 많이 잡을 필요는 없는 거라고 타이른다.


도시락통을 건네받고 멀어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애순은 외친다. 아까 자신이 말렸던 딸의 말을 빌려서. "고기 많이 잡아와" 손을 연신 흔들며 웃는 얼굴로 배웅한다.


어차피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건 애순도 알고, 애순의 남편도 알 것이다. 현실은 명확했다. 남편이 쉬었으면 하지만 그러면 생계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안쓰럽고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위로하고자 했을 것이다. 마치 선물을 사 온 상대에게 '뭘 이런 걸 사 왔어'라고 말하는 듯이.


하지만 그런 말이 오징어 배로 향하는 그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인 걸 애순은 깨닫지 않았을까. 그래서 무거운 걱정을 발목에 매달기보다, "고기 많이 잡아와"라며 명랑하게 등을 토닥여준 것이 아닐까. 자신의 남편을 그저 안타까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듬직한 가장으로서 자랑스럽도록 말이다. 애순은 애써 선물을 준비한 사람이 김빠지지 않게 몹시 기뻐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딸아이가 건넨 '오징어 백 마리'는 지극히 정량적인 의미일 테지만, 아내가 건넨 "고기 많이 잡아와"는 정량적인 의미와는 한참 동떨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그날 그물에 들어오는 생선의 마릿수와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그러한 정성적인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미숙해서 말 뒤편에 있는 마음을 미처 볼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오늘 애순의 "고기 많이 잡아와"를 듣고 깨닫는다. 말은 마음의 수단이다. 형태만이 전부가 아니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건 형태 이외의 것도 헤아릴 때다.


눈앞의 글과 귀 옆의 말만이 아니라, 형태를 갖추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성숙해지지 않을까. 마음을 읽고 들어야 온전한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말과 글은 마음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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