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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끌어안는 법

우리가 가진 결핍은 사실, 적이 아니라 같은 편 아닐까요?

by 시야

주워들은 말을 사랑합니다. 방구석 1열이란 프로그램에서 김이나 작사가는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의 결이나 질감은 결국 잘 관리되어
온 콤플렉스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김이나 작사가가 말하는 '콤플렉스'는 지금 꺼낼 '결핍'과 동의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결핍들과 마주합니다. 성격이든, 관계든, 성과든, 경제적이든, 사회적 위치든 뭐든지 간에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결핍의 소재가 될 수 있겠습니다.


살아가면서 결핍과 마주하는 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기본적으로 비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삶이 비어있으니까 계획이란 존재하고, 또 대학교 3학년 1학기 시간표도 짤 수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근데 비어있는 와중에 구멍 같은 게 존재해요. 삶이란 주머니에 뚫린 건데, 저는 그게 결핍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를 좌절하게 만드는 콤플렉스죠. 결핍과 만나는 경우의 수는 총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결핍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계시거나, 아마 조금 있다가 겪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정류장처럼. 결핍은 그렇게 삶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핍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김이나 작사가는 저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어른이 되는 과정에는 결핍이란 관문이고, 결핍을 관리하는 방식대로 한 사람의 결과 질감이 짜이는 거죠. 그렇다면 저런 결핍을 잘 관리하려면 어떻게 할까요? 5분 정도 여유가 되신다면, 고작 22살짜리가 찾은 '결핍 관리법'을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 결핍을 먼저 밝혀야겠죠. 제가 지닌 결핍 중 하나는 성격입니다. 예전에는 내향적인 성격이 너무 싫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 더 심해졌죠. 눈치만 보고,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자신감도 없고, 그런 제가 싫었습니다. 사실 결핍 자체가 사람을 망가트린다기보다, 비교라는 후작업에서 무너짐은 일어나는 것 같아요. 바로 '내가 가진 결핍이 없는 이'들과의 비교에서 말입니다. 제가 그 모양이니 저와 대비되게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빛나보였습니다.


그들이 선생님과 주고받는 농담이, 천연덕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이, 유쾌함과 밝음이 갖고 싶었어요. 그들만의 당당함이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들과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저울질했습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저러지 못할까, 자책과 우울을 겪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이었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했습니다.


그럼에도 전 바뀌고 싶었습니다. 사람에 내성이 생기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처방한 건 '노출'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모조리 잡았습니다. 사람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는 스스로를 내놓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다 보면 타인의 시선 앞에서 언젠가 무뎌지겠거니, 단단해지겠거니 싶었던 거죠.


그 밖에도 괜히 외부에서 강연이 오면 손들고 질문을 꼭 하나씩 했어요. 내용 자체의 호기심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는 연습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연히 말은 떨렸고, 발음은 뭉개지기 일쑤였죠. 괜히 했나 싶은 후회도 빈번했습니다. 그래도 했어요. 아직도 저 연습을 하고 있고요.


근데 하다 보니까요, 대학에 와서 어느 순간 발표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더라고요. 결핍이 사람을 키우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에서 유병욱 CD가 '인생의 해상도'라는 저서에서 쓰신 구절을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멈추는 지점에서 몇몇 사람들은 굳이 조금 더 나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사람의 스타일이 생겨요.


아까 김이나 작사가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람의 '결과 질감'은 방금 유 CD 님의 문장에서의 '스타일'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성격이란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발표'라는 삽을 들었죠. 그러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나름의 재미도 있고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스피치 강의도 찾아 듣고, '굳이' 자발적으로 발표를 도맡았죠.


결핍은 앞서 소개한 문장에 있는 '굳이 더 나아가는' 순간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결핍이 생기면 채우고 싶고, 그걸 위해 뭐라도 하게 됩니다. 근데 결핍이란 건 사람에게 간절함을 주어서, 더 매달리게 만들어요. 남들보다 더 목메게 만들고, 민감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한 발 더 굳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거기서 사람의 질감과 결이 나뉘게 되는 거죠.


'굳이'의 한 가지 예시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저에겐 성격의 결핍에서 나온 무기가 하나 있는데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글이에요. 성격 때문에 입 밖으로 뭔 말을 못 하니, 얼룩진 생각을 덜어낼 곳이 필요했고 그게 메모장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써왔던 글이라는 지금의 저라는 사람을 '어른'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핍은 굳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남들은 한 달에 한 편 쓸까 할까 하는 글을 매일 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글이 모여서 저라는 사람을 만들고, 스타일을 만들고, 결과 질감을 이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니, 성격이란 분야의 결핍이 마냥 나쁜 게 아니었더라고요. 오히려 있어주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태생이 'E'였다면 지금처럼 발표 연습을 하고, 글을 쓸려고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장담할 수 없는 거죠. 결핍을 갈고닦았더니, 비로소 현재의 자라난 내가 있는 거죠. 결핍은 사람에게 살 길을 찾게 만듭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절벽에 미는 것 같이 혹독한 방식으로요.


그래서 '굳이' 무언가를 갈망하게 만들어요. 그 강력한 욕구는 무엇보다 큰 추진력이 됩니다. 어느 순간 남들보다 한 발 앞선 분야를 보면, 결핍이 그 계기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죠. 가난에서 태어나 억만장자로 거듭나는 성공 스토리, 다들 하나쯤은 아시잖아요.


자연스레 이런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결핍이 나라는 사람의 질감과 결을 만들고, 스타일을 만들어 주는 출발선이라면, 더 이상 적이 아니라는 생각이요. 아주 쓴 약인 겁니다. 삼키기 힘들 만큼, 그렇지만 몸에 딱 필요했던 특효약인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결핍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쯤은 반드시 있지 않으신가요? 결핍이 스스로를 키워낸 경험이요.


포만감을 위한 준비물은 허기입니다. 결핍은 자신을 타인과 다른 어른으로 거듭나게 하는 '굳이'를 모색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줍니다. 그런 '굳이'를 발견하게 해 준 결핍에게 고마운 거고요. 그러니 끌어안을 수 있는 겁니다.


성격 외에도 몇 번의 결핍과 만나고, 나름의 방식으로 메웠습니다. 지금은 결핍을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더 이상 결핍이 무섭지 않습니다. 나중에 찾아올 결핍과도 완만하게 합의를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결핍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쓸 수 있게 해주는 필기구의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어른은 결핍으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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