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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만물론 2.

결국 삶은 언제, 무엇이 떠오르느냐가 아닐까요.

by 시야

친구 관계에서도 마음 가는 친구가 있고, 자식에게도 마음 가는 자식이 있듯, 생각에도 마음 가는 생각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세 번이나 연달아 적어놨던 메모입니다.


결국, 삶의 관건은 언제, 무엇이 떠오르는가이다.


겨우 22살인 제가 삶을 논하는 것이 우습기도 합니다. 하지만, 22살도 22년어치의 삶 정도는 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쥐고 있는 각자의 삶이기에, 삶을 말하는 데에 따로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겠죠. 그러니 힘주어서 말해보겠습니다. 삶은 결국 언제, 무엇이 떠오르냐에 결정된다고요. 이걸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풀어보고 싶어요.


당장의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도 하나의 문제이므로, 어쩌면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그걸 풀어나가면서 삶은 재생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건,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문제가 닥치면 우리는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그 방법이 기존에 있는 것이든, 새로이 본인이 창조하는 것이든 어떤 형태로든 방법을 찾고, 그 방식을 적용하면서 문제는 풀어지거나, 더 꼬이게 됩니다.


문제해결은 당시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로 처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도출된 최선의 해답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최선이란 게 정말 최선일까요?


마케팅에는 '구매고려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간단하거든요.) 이는 자신이 구매할 의사가 있는 애들(제품)만 모아논 '머릿속 리스트'입니다. 쇼핑할 때 장바구니에 담아놓는 것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든다면 아이폰 16이나, 갤럭시 s25정도가 구매고려군으로 존재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어째서 화웨이는 구매고려군에 포함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구매 리스트를 만들 때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때, 미처 생각이 나지 않아서 포함하지 못한 겁니다. 이때 화웨이의 처지를 '비상기 상표군'이라 부릅니다. 구매고려군을 형성할 때, 상기가 되지 않은 제품들이란 이야기예요.


여기서, 아이폰 16, 갤럭시 25로 구성된 구매고려군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화웨이를 비롯한 다른 제3의 브랜드들이 더 가성비가 좋을 수도, 성능이 뛰어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두 가지만 놓고 구매를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선택지들은 그 당시에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이처럼, 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제품을 구매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제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하기도 하니까요.)


우리의 문제는 하필 그때 떠오르는 지식, 기억, 아이디어로 해소됩니다. 그 당시에 떠오르는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재료가 되고, 그것들에 기반해서 최선의 해답을 도출해 냅니다.


하지만 그때 모이는 재료들이 '최선'이라고 부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때 떠올린 생각이 목재였다면 오두막이란 해답이 나왔을 테고, 콘크리트였다면 아파트가 해답으로 나왔을 겁니다. 따라서 인간의 문제 해결력은 그 당시 상기된 무언가가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문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식도, 기억도, 아이디어도 결국 문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재료가 당시에 등장하는 문장이라면, 문장을 가꾸고, 다듬고, 보관하는 일은 곧 문제해결의 최전선을 위한 대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 전쟁을 앞두고 총, 칼을 닦아놓는 것처럼요.


그래서 평소에 좋은 문장을 접하고, 좋은 문장을 만드는 일이 문제를 해결하는 기초 체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초에 글은 문제해결의 수단이라고도 생각하고 있고요.


정리해 보자면, 처음의 메모인 '결국, 삶의 관건은 언제, 무엇이 떠오르는가이다.'라는 한 줄은 '문장 만물론'에 의하면 이렇게 변경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삶의 관건은 언제, 어떤 문장이 떠오르는가이다.



상상하기 싫으시겠지만, 만약 내일이 월요일이라고 생각해 보시겠어요? 직장, 학교 혹은 그 어디라도 집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 놓인 우린 좌절하곤 합니다.


특히 지치는 시기에는 강력한 '월요일 거부 반응'을 일으킵니다. 월요일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죠. 오죽하면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일은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이건 뭐 어린 왕자도 아니고요. 학기 중에 월요일 때문에 몹시 스트레스가 받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나는 월요일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구나.



저 문장이 머리에 잡히고 나니까,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이 한껏 누그러졌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어요. 지금 살아있다는 건, 그전에 있던 모든 월요일에게 이겼다는 이야기잖아요?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상대한테 겁먹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월요일을 헤쳐나가는 힘을 안겨준 문장이었습니다. 월요일을 다른 관점으로 봤더니, 문제가 흐물흐물해진 것이죠.


이런 저의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더라도, 하필 그때 떠오른 문장이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SNS를 보면, 한 마디에 기대서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꽤 많다고 느낍니다.


그 한 마디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한 마디일 수도 있고, 책의 한 구절, 드라마의 한 대사, 웹툰의 말풍선일 수도 있습니다. 죽고 싶을 때, 세상 쪽으로 밀어주는 하나의 문장이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이는 죽음이란 문제에, 그걸 해결하고자 재료로 쓰인 귀중한 한개의 문장인 셈입니다. 그때 그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살아있을지 장담하지 못했겠죠.


그래서 저는 주워들은 말을 사랑합니다. 언제 저의 문제해결의 재료가 되어줄지 모르는 노릇 아닌가요. 한 권의 책은 다 남지 못해도, 하나의 문장쯤은 남기는 것쯤이야 할 수 있죠. 물론 그게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할지는 미지수이지만요. 그럼에도 재료는 채워 넣는 겁니다. 찾고 찾다가 만날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주워들은 한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소개된 문장인데요. 첫 번째 단어인 '자존'을 설명할 때 인용된 글입니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


이제는 거의 툭치면 툭 나오는 문장입니다. 그만큼 저에게 자유를 준 문장입니다. 삶이라는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재료로 쓰인 문장입니다. 완벽한 인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담고 있는 자유의 문장입니다.


제가 방금 소개한 문장과 더불어, 지금까지 저의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 감히 당신이 지어내는 해답의 재료로 쓰일 수 있길 바랍니다. 삶의 태도도 결국엔 문장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신에게 좋은 문장만 떠오르길 바라면서, 문장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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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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