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계시나요? 생각의 모습도 결국 문장이라는 걸
글에도 말투처럼, 글투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흔히 문어체와 구어체가 있죠. 담백하게 딱딱 끊어 쓰고 싶을 때는 문어체를 쓰는 편이고, 조금 친절히 쓰고 싶을 때는 구어체를 쓰는 편입니다. 오늘은 작년과 올해를 통틀어 눈이 가장 많이 내렸고, 작은 설날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잤던 하루네요. 시간의 여유는 마음의 여유를 낳고, 친절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절에도 여유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제가 오늘 해볼 건 문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단어의 합이 문장이고, 문장의 합이 글이라고 할 때, 글을 잘 쓴다는 건 무엇일까요? 이는 아마 알맞은 단어로 딱 맞는 문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고, 완성된 글에 다시 한번 곱씹어 볼 만한 문장이 가득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단어가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순간은 문장이란 맥락을 갖췄을 때입니다. 우리가 글에서 감동하는 형태 또한 문장입니다.
'파리는 어째서 이름도 파리인건지'라는 아시아나 항공의 카피처럼, '문장은 어째서 이름도 문장인 건지'를 방불케 하는 애틋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문장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생각도 문장을 이루지 않던가요? 과거의 일을 회상할 때에도, '아 그때 뭐 했지?'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쓰이고, 좋은 걸 볼 때도 '그 사람이랑 같이 보면 좋았겠다'는 혼잣말, 아니 혼잣문장이 떠오르지 않던가요?
우리는 언어로 사고한다고 합니다. 이는 곧, 생각의 모양도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는 경우를 쉽게 보는데, 그 이유는 아마 문장을 조합하는 일이 익숙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든, 보이든 우린 문장으로 살아가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3살 때부터 가, 나, 다, 라를 배우는 순간 어쩔 수 없어요. 누구는 언어에 사고가 종속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좋으나 싫으나, 우린 문장으로 사고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문장을 적절히 다룰수록 더 나은 삶을 살겠죠.
문장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문장에 애틋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가진 카피라이터라는 꿈의 지분이 커요. 제가 좋아하는 김새별 카피라이터의 문장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말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엮어 넣는 사람. 제자리를 찾은 것만으로 말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어."
이 글을 읽고 쓴 저의 감상도 잠시 덧붙일게요.
물론 이건 카피라이터의 전유물은 아니고, 단어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린 생각도 단어로 하잖아요. 적절한 단어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면, 글도, 말도, 생각도 자연스레 맑아지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뱉지 않아도 되는 말이, 쓰지 않아도 되는 글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단어의 적절한 자리를 발견하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요.
일단 얼마나 행복한지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느끼는 좋은 것들은 돌풍처럼 불어옵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그런데 그런 감정은 금세 시간의 틈 속으로 빠져버립니다. 인간의 망각의 존재이고,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감정과 기분과 느낌에 이름을 붙여주고, 문장으로 바꿔주면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어요.
비유하자면, 가만히 두면 2.0배속으로 잊히는 기억이, 0.5배속으로 더 천천히 남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과거의 글을 보면, 당시의 감정과 느낌이 살아나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문장은 단어로 남기는 일종의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간히라도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글로 얻은 자유와 풍요와 설렘과 기쁨을 제게 소중한 사람도 느끼면 좋겠어요. 생경한 감정과 마음과 기분을 살필 때, 잊지 않고 주머니 속에 고이 접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을 때, 미처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때, 생각이 충분히 중력을 받아 가라앉고 싶을 때, 나도 나를 모르겠을 때, 글은 언제나 나름의 답을 찾아주었거든요.
그래서 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고, 이불을 덮으면 몸이 따듯해지듯이, 글을 쓰면, 글만이 주는 무언가가 분명 있습니다. 300편의 길고 짧은 글을 써오면서 몸소 겪은 거예요. 딱히 허술한 저의 경험을 근거로 하지 않더라도, '글'의 눈부심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지 않던가요.
카피라이터라는 꿈을 가진 게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유가 '글'덕분이에요. 카피라이터란 직업이 '글'을 소개해주었거든요. 문장으로 생각하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우리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건, 이차방정식도 아니고, 관계대명사도 아니라 문장을 건축하는 법이 아닐까요.
글쓰기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한번 한 문장이라도 적어보시겠어요? 계기는 사소할수록 힘이 있을지 모릅니다. 지금, 한번 써볼까?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외면하지 마시고 휴대폰 메모장이든, 블로그든, 다이어리든 열어보세요.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의 문장이, 당신의 글의 계기가 되기를 감히 바랍니다. 당신은 지금도 문장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꺼내기만 하면 모두 '글'이라고 불러요. 당신의 생각이 문장이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저 문장이 쓰이는 장소가 전두엽에서 지면으로 바뀔 뿐입니다. 이미 당신은 훌륭한 문장가입니다. 기억하세요. 문장 만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