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인간이 말하는 꾸준함이 쉬운 이유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발목 잡힌 개념이 있다. '거속시'라고 주구장창 외웠던 거리, 속력, 시간의 공식들이다. 이 개념이 와닿은 건 무려, 고등학교 물리시간이었다. 속력과 시간을 곱하면 이동거리가 된다는 의미를 그때 비로소 이해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속력이 '0'만 아니라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는 말이구나."
[속력 X 시간 = 거리]에서 시간은 언제나 양수다. 이 말은 저 공식에서 속력만 '0'이 아니라면 거리는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즉 0.000001km/h의 속력을 가져도 시간이 흐른다면 어디든 닿는다.
다시 말해, 시간은 시간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우리가 할 건 하나다. 작은 것이라도 그냥 '하면' 된다. 최소한의 속력만, 최소한의 걸음만 떼어도 된다. 우공이산이란 사자성어도 있지 않던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으면 끝이 있다.
그래서 사실 꾸준함은 쉽다. 그냥 시간에 얹혀가면 된다. 시간은 항상 흐르고, 항상 제 몫을 다해줄 테니, 내가 '0'만 아니면 된다. 양수이기만 하면 된다. 꾸준함을 분해한 결과, 양수의 속력을 갖추기만 하면 해피엔딩이다. 단순하다.
예전에는 그저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나 싶었다. 지나고 보면, 허덕였던 일, 힘들고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과거에 남았다. 그래서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문제해결 1타 강사'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아래 문장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인스타에서 건진 문장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좀 더 자란 당신이 해결해 준다.
그랬다. 시간만 힘써서 해결되는 문제는 어디에도 없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행동하고, 판단하고, 선택한다. 그렇기에 변화한다.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시간의 역할도, 사람의 역할도 존재한다는 것을 예전엔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변화는 처음부터 불도저로 밀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검지 하나로도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준다. 우리가 할 일은 끊임없이 미는 일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란 책도 있다. 또 이는 대단하신 분들, 모두가 선망하는 무언가를 이뤄낸 분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작게 하자고 생각한다. 하도 들어서 이제는 거의 진리처럼 여겨진다.
멀리 가지 않고, 경험을 들춰봐도 타당하다. 내가 성취한 것들, 해결한 문제들을 분해해 보면 작은 단위로 수렴하지 않던가. 손가락으로 밀자. 대신, 멈추지 말자. 면허도 없으면서 섣불리 불도저를 몰 생각은 빨리 갖다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린 우리의 속력을 갖추고, 그걸 지키는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꾸준함이 단순하고 쉽다고 위에서 떠들었지만, 사실 난 꾸준함과 거리가 먼 인간이다. 꾸준함은 정말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꾸준함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꾸준한 건 그냥 내가 양수이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지금까지의 내용이다.
꾸준함에 대해 좀 더 생각을 해본다. 마땅히 이런 의문이 든다. 꾸준함은 왜 힘들까? 왜 갖추기 어려울까?나의 답은 이렇다. 꾸준함이 힘든 게 아니라, '꾸준하고 싶은 일이 힘들어서' 어려운 것이다. 다이어트, 토익, 자격증, 시험 등 우리가 꾸준함을 바라는 일은, 하기 싫은 것들 투성이다.
사실 꾸준함 자체가 힘든 건 아니다. 우린 하루도 빠짐없이 잠에 들었고, 눈을 떴고, 밥을 먹었고, 볼일을 봤다. 매일 걸었고, 옷을 입었다. 꾸준함은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일상은 꾸준함으로 서술된다.
단지 그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리고 그게 어려운 이유는, 적용하려는 일이 하기 싫고, 재미없고, 지루해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꾸준함의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럼, 속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시동을 걸어야 할까?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펴보면, 하기 싫은 일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하기 쉽게 만들라고 했다. 그 주장에 기반하여 이런 생각을 했다.'내가 지금 하는 일이 손해보다 이득이 더 많다고 생각하자.'
하기 싫은 무언가를 억지로 하는 것 자체는 손실이다. 시간적, 감정적 비용을 초래했으니 말이다. 꾹 참느라 의지력도 쓴다. 이득보다 손해가 더 눈에 잘 띄는 특성은 심리학적으로 이미 규명되었다. 인간은 손실을 이득보다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우린 작은 일을 하고자 할 때의 이득을 악착같이 더 찾아야 한다. 일종의 의미부여다. 아니, '의미 발견'이다. 내가 오늘도 이 작은 일을 해냄으로써 얻는 여러 가지 이유를 탐색하는 것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글의 처음 부분에서 말한 '필연적 도착'의 관점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기만 하면 도착지와 가까워진다. 속력이 0만 아니면 어떻게든 닿는다. 많은 경우에 오늘 하든 안 하든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별반 차이가 없고, 내일 두 배로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며 우린 좌절한다. 이번에도 실패네, 다음을 기약하자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작심삼일이 모두 그랬다.
이렇게 된 이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오늘 이 작은 일을 누락하지 않음으로써 본인이 바라는 상태에 가까워졌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가 저기 멀리 보이지만, 오늘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가야 할 거리가 줄었다는 것에 온 힘을 다해 기뻐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거리, 속력, 시간이라는 지극히 초등학교 수준의 상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꾸준함만 있으면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력은 꾸준함에서 태어나고, 꾸준함으로 증명된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에서 얻는 것이 실력이며, 그 실력을 '꾸준히' 유지할 때 우리는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 대표의 최신 저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잘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지속해야 실력이다. 꾸준해야 실력이다.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무언갈 성취하기 위해서도 꾸준함은 필요하다. 그리고 꾸준함에는 속력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 수는 빈약해도 된다. 0만 넘으면 된다. 소수점이어도 상관없다. 10만 분의 1, 100만 분의 1이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기어가도 되고, 굴러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유지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본인이 속력을 지키는 일, 꾸준함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언젠가 도착할 테니. 멈추지 않으면 어디든 닿는다. 이렇게 장담할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을 믿기 때문이다. 시간은 단 한 번도 꾸준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꾸준한 녀석은 시간이다.
그래서 시간은 힘이 세다. '꾸준함 = 실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어떤 존재보다 실력 있는 놈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시간에게 기대는 일이다. 꾸준함의 전문가인 시간에게 기대는 일이다. 딱 한 가지, 나만의 속력을 갖춘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