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형이 찾은 아주 작은 계기의 힘
안녕하세요? 다각형입니다. 삶을 살고 있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편인데요. 삶을 일컫는 다양한 비유가 있지만, 현재로서 제가 찾은 가장 적절한 비유는 '도형'입니다. 삶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삶은 직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사람이 있고, 문장이 있고, 관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결코 직선을 유지하지 못해요. 하나의 문장과, 관점과, 관계에 삶의 궤도는 조금씩 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거쳐간 것들은 꼭짓점을 이루고 도형으로 남죠. 다각형의 삶을 사는 중이네요.
꼭짓점에 이름을 붙인다면 '계기'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계기가 크지 않을수록, 별 게 아닐수록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계기라 할지라도 각도를 틀어줄 위력은 충분하거든요. 작은 계기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파헤쳐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진입장벽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도전의 규모와 그에 따른 공포심은 비례합니다. 잃는다는 두려움은 변화를 가로막는 벽입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시도하려는 문제의 규모가 작다면,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쉽게 든다는 의미입니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서 오디션 봤다가, 연예계에 입문하게 되는 이야기를 종종 봅니다. 그분께서는 처음부터 연예인이 될 생각은 없으셨겠죠. '재미 삼아 한번 해볼까?'가 사고회로의 전부였을 겁니다. 이 오디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나를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등의 잡다한 긴장, 불안, 두려움이 끼어들 틈은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된 계기가 너무나 사소하기 때문입니다. 친구랑 재미로 간 거죠. 그렇게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쉽게 넘볼 수 있는 '도전'이 된 것입니다. 아니, 도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심심풀이인 셈이죠. 같이 간 친구와는 다르게 말이죠. 덜 겁먹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경쟁력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주선의 항로는 1도라도 틀어지면, 본래 목적지와 전혀 별개의 곳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작은 계기도 어엿한 계기입니다. 너무나 작아서 당시에는 계기라고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에요. 그러나 성장과정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한 점에 닿아요. 때로는 내가 이렇게 '작음'에서 출발했다고 놀라곤 합니다. 그러니 그 작은 계기가 너무 소중해지는 겁니다. 변화의 계기는 사소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계기의 힘, 두 번째는 일상에서 만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앞서 든 예시처럼, 계기는 친구가 지나치듯이 건넨 한마디일 수도 있습니다. 책의 한 구절, 우연히 들은 한 사람의 강연, 수업시간에 번외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 계기인지 알아보고, 그걸 계기로 삼겠다는 노력이 쓰인다면요.
저의 경험을 빌어보면, 지금의 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정말 티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예요. 문이과는 없어졌다지만, 전 2학년 후반까지 이과계열로 가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단순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 대학의 모의면접을 신청했습니다. 별 생각이 없었던 터라, 어떤 학과의 면접을 볼까도 생각하지 않았었죠.
그렇게 학과를 살피다가, 신문방송학과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시작으로 미디어 관련 학과를 찾아보고, 끝내 광고홍보학과에 닿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진로를 비롯해, 삶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모의면접'이란 작디작은 계기로 또 다른 우주를 찾은 거죠.
사람도 계기입니다. 사람들에겐 전부 닮고 싶은 구석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귀감으로서 존재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요. 동경이 취미인 터라, 멋있어하면서도 나도 저런 생각이나, 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즉 존재만으로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하고 싶으면, 주변을 먼저 바꾸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작은 계기로 다가오니까요.
작은 계기들에게 고맙습니다. 이렇게 꼭짓점으로 남아 준 사람과 문장과 관점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장이 오로지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N분의 1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고마워집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계기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계기로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보답하고 싶어 집니다. 나의 소중한 계기들에게.
작은 계기란 마치 휴대폰 충전기를 꽂고 잠을 자는 겁니다. 자려고 하는 순간, 확인한 거죠. 배터리가 11%라는 사실을요. 피곤하고, 귀찮고 그래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충전기를 연결합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100%가 되어있죠. 물론 과충전이 배터리 수명을 닳게 한다고는 하지만요. 내일 아침 휴대폰이 무용지물인 것보다야 나으니까요.
만약 충전기를 꽂지 않고 자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삼성페이는 쓸 수 없고, 어쩌면 자는 중에 휴대폰이 꺼져버려 알람도 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귀찮아서 그냥 잤으면 벌어질 수많은 문제들을, 그저 충전기를 꽂는다는 행위만으로 바로잡게 됩니다. 그 작은 계기 하나로 말이죠.
삶에는 이런 충전기 같은 계기들이 찾아보면 널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5초 정도 침대에서 잠시 일어나 책상으로 갈 정도의 의지겠죠. 또 작은 계기를 알아차리고, 변화의 꼭짓점으로 삼아보려는 노력이겠죠.
계기의 안테나를 높게 세워보렵니다. 어쩌면 떨어지는 눈조차도 하나의 계기가 되겠죠. 계기는 몸집이 작을수록 주머니에 넣기 쉬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