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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엎지르는 일

어째서 글을 쓰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by 시야

깊게 들어갈수록 부족함이 드러난다. 알맞은 문장과 정확한 단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책을 만나면 넋을 놓고 감탄하게 된다. 그들이 쓴 밀도 높은 글에 비해 나의 글은 앙상하고 비어있다. 질투 나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생명은 '일생'이라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시간이라는 형태로 분할 지불이 가능하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곧 시간을 준다는 것이다.(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6)


쓰기에 시간을 두면서 살고 있다. 가져온 문장대로 글쓰기에 생명을 쓰고 있는 중이다. 뭐 하러 글을 쓰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묻지도 않은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었다. 왜 글을 쓸까. 좋아하는 데에 꼭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겁게 좋아해서 이유를 대고 싶었다. 갑자기 물어도 언제고 대답할 수 있도록. 왠지 쓰는 인간으로서 한 번쯤은 답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유를 찾았다.


글쓰기란 무언가를 찾는 일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찾고, 감정과 기분의 이름을 찾고, 생각과 고민의 꼬리를 찾았다. 그 증거로 문장이 앞에 남았다. 쓰기란 치열한 일이었다. 어떤 결핍에 웅크리고 있고, 어떤 익명의 감정에 매달리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글은 소중한 무언가를 찾게 했고,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했다.


작은 것들은 찾기 힘들다. 한 번에 털어 넣은 가방 속에서 무선 이어폰, 립밤, 카드지갑, 충전기 포트를 단번에 꺼내기란 어렵다. 손에 쉬이 잡히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작은 것을 찾아내려 뒤적거린다. 그걸로는 부족해서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둘 꺼낸다. 이내 가방 전체를 뒤엎는다. 그렇게 털어내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있다.


어질러진 가방에서 작은 것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내용물을 전부 꺼내는 일이다. 한참을 뒤적거려도 깊숙이 숨어버릴 땐, 속 시원하게 가방을 뒤엎으면 된다. 글은 나를 찾기 위해 나의 모든 걸 엎질러보는 일이다. 한 문장, 한 문장 꺼내다 보면 숨어 있던 스스로가 딸려 온다. 전부 엎질러보는 것. 그게 쓰기에 치유받고, 위로받고, 힘을 얻는 방식인 것이다.


세상에 예정된 문장은 없다. 쓰다가 어떤 타이밍에 목구멍에 걸린 가시가 빠져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계속 게워 내다 보면, 어느 순간 필요한 문장을 만나게 된다. 스스로만이 내릴 수 있는 처방이 있다. '이미 엎질러진 나'의 수만큼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번 자신을 엎질러보면 어떨까. 우당탕탕 소리가 나게. 될 수 있는 한 요란하게. 떨어진 것들이 어디로 튈지 신경 쓰지 말고, 그저 엎질러 보면 어떨까.


안심해도 좋다. 글은 지면 밖으로 흐를 수 없고, 보여주지 않는 한 보여지지 않으니까. 쓰기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내게 글은 언제나 무언가를 찾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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