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 3
혼자 살고 계시는 친할머니를 종종 뵈러 갈 일이 있다.
명절이나 생신에는 용돈을, 어버이날에는 선물을 꼭 준비하는데 보통 선물은 올리브영이나 홈플러스 등에서 살 수 있는 선크림(텃밭 가꾸실 때 바르시라고), 핸드워시(코로나 시대니까) 등 소진이 가능한 제품들을 구매해서 드린다. 그런데 혼자 사용하셔서 그런지, 아님 워낙 검소하시고 알뜰하셔서 그런지 한 번 뭐를 사드리면 되게 오래오래 쓰시고 그러다가 사용 기한을 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작년 겨울쯤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코로나 초창기에 사드린 것 같은 핸드워시가 드디어 개봉되어 있었다. 신나게 사용했는데, 손을 너무 여러 번 닦아서 그런지 아니면 물기를 안 말린 채로 긴 팔 옷을 입어서 그런지, 워낙 건조한 날씨에 손과 팔이 따끔따끔한 것 같았지만 별일 있겠나 싶어 핸드크림도 안 바르고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두드러기 마냥 뭐가 잔뜩 올라온 것이다.
대학교 때 딱 한 번 팔에 뭐가 올라와서 피부과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도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크게 알러지를 앓고 있지는 않아서, 잠잠해지려니 했던 두드러기는 점점 더 심해지고 간지러우니 긁게 되고, 긁으니 피도 살짝 비치고 딱지가 지면서 피부 톤도 어두워졌다. 결국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바르고 나서야 원인 모를 피부병이 나았다.
오랜만에 다시 팔 전체에 두드러기가 났다. 평소 샤워 후 바디로션을 전혀 바르지 않는데, 손과 팔에만이라도 듬뿍듬뿍 바르기 시작했다. 조금 상태가 나아졌다가 호주 여행을 가서 다시 건조함에 시달렸다. 다시 괜찮아졌다가 최근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두드러기가 나는 게 아닌가. 이게 한 번 올라오면 잊을만할 때 또 올라오고 또 올라오는 것 같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약을 발랐다. 스테로이드가 들어있는 연고라서 일주일 이상 바르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추가로 손 닦을 때마다 꼭꼭 핸드크림을 바르고, 자다가도 손과 팔이 건조하면 핸드크림을 듬뿍 발랐다.
오늘 내 팔과 손을 보니 언제 두드러기가 올라왔었나 싶을 정도로 흔적도 없고 간지러움도 전혀 없어서 기쁜 마음으로 갑분 핸드크림을 추천해보려고 한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류는 개인마다 맞고 안 맞고의 차이가 커서, 보통 선물로는 핸드크림, 립밤 혹은 핸드워시를 주고받게 된다. 나도 내가 직접 산 핸드크림도 있었지만 선물 받아서 써본 제품들도 많았다.
록시땅, 카밀, 아트릭스, 이솝, 조말론, 오모로비짜, 데메테르, 바이오더마, 빌리프, 온호프, 캐스키드슨, 토니모리, 투쿨포스쿨, 프리메라, 네이처리퍼블릭, 더샘, 미샤, 스킨푸드, 어퓨, 이니스프리, 잇츠스킨, 에뛰드하우스, 몽로제, 쉬엘리사벳, 어라운드미, 엔프라니, 올빚, 하임, 허바신, 스카이보틀, 더블유드레스룸 등등... 별의별 핸드크림을 다 써봤는데, 손에 잘 흡수되어서 안 묻어나는 제형을 가장 중요 시 하는 나에게 록시땅 시어버터 핸드크림은 정말 맞지 않았다(대신 립밤은 최고였음). 잘 아시다시피 손 씻고 젖은 상태로 빡빡한 알루미늄 케이스를 짜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도 동생이 치약/크림 짜개를 사 와서 사용해보려고 하는데, 이런 글을 발견했다.
요약하자면, 알루미늄 용기가 불편해도 재활용이 용이한 장점이 있고, 겉은 알루미늄이어도 내부가 복합 소재일 경우 재활용이 아예 불가하다는 것이다.
하... 내가 원래 추천하려던 핸드크림은 이것이었다.
퀸5와 스파클링로제를 선물 받아서 하나는 직장에, 하나는 집에 두고 쓰고 있는데 용기가 편리하고(짜기 쉬운 부드러운 튜브에 열기 쉬운 뚜껑) 촉촉하고 묻어남이 없고, 향도 괜찮았다. 그런데 심지어 50ml짜리 5개에 배송비 포함 14,500원이라니... 개당 2,900원이면 로드샵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30ml짜리 핸드크림의 할인가보다 저렴한 것이다. 심지어 그런 핸드크림은 아주 가벼워서 보습력은 부족한 편이란 말이다.
그런데 아로마티카 글을 보고 다시 살펴보니, 제이멜라 제품에는 아예 재활용이 불가하다고 표기가 되어 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핸드크림 중 스카이보틀은 본통에 아예 표기가 없으므로 재활용 불가로 보이고(집에 가져가서 크림짜개로 다 긁어 쓰고 꼭 잘라 봐야겠다. 안에 플라스틱이 덧입혀져 있는지),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재질인 록시땅 라벤더는 외국 제품이기는 하나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판단된다.
웬만하면 지구에 부담이 되지 않는 소비를 하고 싶은데, 참 쉽지가 않다. 그저 아로마티카처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준다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의사가 있다. 그래서 다음 핸드크림은 아로마티카에서 구매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시고 제이멜라 핸드크림을 사는 분이 계시다면 그것 또한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할머니께 핸드크림을 사드려야지. 가서 발라드리면서 할머니 손은 괜찮은지, 두드러기는 없는지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