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 6
8월 초에 이제 좀 지출 통제가 잘 된다고 자신했는데, 8월의 절반을 지나는 지금 계획대로 지출을 하면 벌써 남은 예산이 없다... 이번에도 월말 약속을 다음 달로 미뤄서 월 50만 원 지출 예산을 지키려고 했으나 그래도 도저히 달성 불가할 것 같아서 중간 정산 겸 '비상금'의 범위를 정해보려 한다.
1. 이번 달 초에 이것저것 지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싹 다 합쳐봐야 20만 원 수준이고 그중 약 6만 원은 교통비, 1만 원은 헌금이었다. 헌금 제외하면 무지출데이도 6일이나 된다.
정원e샵에서 링귀니 면 500g, 파스타 소스 2종, 육포를 1만 원에 샀다. 면만 한 번 더 사면 2인 기준 4끼를 집밥으로 해결할 수 있다. 1,380원 하는 노브랜드 링귀니 면을 꼭 쟁여놔야지. 근데 가는 곳마다 다 품절이라서 언제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500ml 샴푸 4통을 12,400원에 샀다. 쟁여놨던 플라스틱 통 샴푸들을 정말로 다 썼고, 비누 형태인 샴푸바들은 금방 물러 버리는 여름이라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약간 생강향 같은 게 나서 신경 쓰이지만, 비건 제품이고 기존에 쓰던 퍼퓸 샴푸들보다 훨씬 두피도 편안하고 사용감도 좋아서 아주 만족스럽다. 다음에 꼭 다른 향으로 사봐야지! 그리고 유독 구독해 놓아서 배송비만 내면 구입 가능한 동구밭 샴푸바를 잊지 않고 월말까지 배송받을 것이다.
두끼떡볶이에서 우삼겹 2천 원을 지출했다. 5,500원짜리 크런치 치즈 퐁듀가 포함된 2인 식사권을 1만 4천 원에 구입해 두었으니 인당 8천 원으로 정가 10,900원보다 저렴하게 먹은 것이다. 그런데 마라떡볶이와 치즈 퐁듀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배만 더 불렀다... 평도 괜찮은 지점이었는데 애매한 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튀김도 다 식고 많이 아쉬웠다. 그나마 탄산수가 있어서 좋았지만, 이제 두끼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나약한 위장이여!
훈제오리 가슴살 6팩 1만 5천 원, 오스트리아산 냉동 삼겹살을 7천 원에 샀는데 생각보다 둘 다 좀 아쉬웠다. 그나마 할인을 받아서 다행이지 정가로 샀으면 눈물 날 뻔... 훈제오리는 양이 적어서 슬펐고 삼겹살은 구우니까 뻣뻣해서 슬펐다. 그래도 훈제오리는 파스타에 넣어 먹고, 삼겹살은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에 넣어 먹으니 부드럽고 맛있었다.
처갓집양념치킨에서 6천 원으로 두 마리를 배달시켜 먹었다. 할인 쿠폰에 배민 상품권에 네이버페이에 다 끌어 모으고 동생과도 돈을 나눠 냈다. 요새 특히 동생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공용 물품이나 각종 페이, 상품권 활용이 가능한 곳에서는 내가 주로 사주고 아닌 곳에서는 동생이 사주는 식인데 아주 고맙다. 내가 브리타 필터 3개를 16,800원에, 생리대 중형 4팩을 6천 원에 샀다. 메가커피, 편의점 등에서도 샀다. 패스오더 앱에서 할인도 많이 받았다. 동생이 버거킹과 에그드랍을 사줬다.
추가로 애증의 할리스! 아메리카노 쿠폰이 4장 생겨서 텀블러 챙겨 들고 룰루랄라 갔는데 쉽지가 않았다;;; 일단 쿠폰 사용 불가한 지점이 꽤 있어서 사전에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생돈 쓴 건 안 비밀...ㅎㅎㅎ 또, '커피' 음료 '레귤러' 사이즈 한정으로 쿠폰 사용 가능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커피 음료가 아니거나, 다른 사이즈면 아예 쿠폰 적용이 안된다. 한 주문당 쿠폰 하나만 사용 가능한 건 애교다. 결정적으로 키오스크에서 텀블러 할인이 안 된다는 사실. 이디야커피도 그렇던데 주문 접수할 때 텀블러 사용 여부가 확인이 안 되어서 그런 걸까?! 하여간 위 제약들 때문에 키오스크에서 주문 못하고, 포스에서 계산했다가 취소하고 다시 결제했는데 나중에 보니 결국 한 잔은 텀블러 할인도 안 해주셨다 ㅠㅠ 예를 들어 아이스 바닐라 딜라이트 레귤러 한 잔을 마신다면, 정가 6,100원에서 아메리카노 쿠폰 가격 4,500원을 빼서 1,600원이고 텀블러 할인 300원을 적용하면 1,300원을 내면 된다. 음료 정가는 아래 링크에서 참고해 보시라. 할리스에서 공식 판매하는 할리스콘도 위 제약들이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스벅 기프티콘의 편리함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 것뿐이지 회사 정책에 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언제 마셔도 참 맛있는 아바딜! 아이스 바닐라 딜라이트가 당류 25g이라서, 당류 31g인 핫보다 당류가 더 적다는 사실을 얼죽아인 나는 기뻐한다.
https://m.hollys.co.kr/mall/mallList.do
2. 30만 원을 두방에 쓰는 방법?!
그럼 어쨌든 현시점에서 월 지출 예산이 30만 원은 남아야 하는데 문제는 이번 달에 여름휴가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직 출발은 하지 않았는데, 저렴한 숙소와 교통비 외에 5만 원 정도만 추가로 예산 배정한 것이 나의 패착이다... 단순하게 한 번 정도 고기 구워 먹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컵라면 먹고 외식 두어 번 할 생각이었는데, 같이 갈 사람들이 알아온 맛집들을 보니 한 끼에 1인당 3만 원이 넘는 관광지 물가라 총 5만 원 가지고는 2박 3일이 택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만 안 먹을 수도 없고요...
그다음으로 큰 예정 지출은 콘서트다. 추석 때 콘서트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최소 한 달 전인 8월 말쯤 티켓팅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러면 15만 원 정도는 또 그냥 나간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기획사에 비해 표값이 저렴한 거다. 운 좋게 9월 초에 티켓팅을 한다면 다음 달로 지출을 미룰 수 있겠지만 안 그럴 확률이 더 높다.
8월 31일까지 정말 손가락만 빨면서 월 지출 예산 50만 원을 지킬 수 있었으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이리저리 고민을 해보아도 이미 쓴 돈은 어쩔 수 없고, 또 앞으로 쓸 돈도 어쩔 수 없으니 남은 것은 비상금 통장이다.
3. 내가 그동안 통장 쪼개기를 통해 나눠 놓은 자금들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가. 26주/기타 적금 -> 만기 되면 비상금 통장으로 이전
나. 최애 적금 -> 미국 여행 경비 활용 (목표는 2년에 200만 원 이상)
다. 청년희망 적금 -> 만기 되면 주식 예수금으로 활용 (1천3백만 원)
현재 나의 비상금 통장 잔액은 30만 원이다. '비상금'이라는 명칭에 가장 잘 맞는 지출에는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병원비이다. 나는 직장에서 제공해 주는 실비 보험이 있는데, 병원을 거의 가지 않다 보니 한 번도 활용해 본 적은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쓴 병원비라고 해봐야 코로나 검사 비용, 치과 비용 정도인데 갑작스럽게 큰돈이 들어갈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차곡차곡 모아두어야겠다. 그래서, 얼마를 모아야 하는데? 이건 좀 고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비상금 통장 활용이 필요한 지출이 경조사비다. 지난 5년 간 경조사비 지출을 돌아보면 생신, 어버이날, 설날, 추석만 따져도 160만 원은 필요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 용돈으로 상계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축의금, 부의금까지 미리 준비한다면 얼마가 필요할까?
그럼 이번 달 같은 휴가비나 공연비는 어떨까? 네이버 '월급쟁이 재테크 연구카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확실히 8월이 휴가의 달이긴 한지, 1인 가구분들 중에서도 연간비로 휴가비와 뮤지컬 관람 등 문화생활비를 대체했다는 글이 많았다. 비상금이라기보다는 연간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올해 내가 월 지출 50만 원 이하라는 목표를 세운 이유는 연간 3천만 원 자산 증식, 나아가 3년에 1억 모으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6년에 2억을 모아 대출을 포함하여 내 집 마련을 할 수도 있고, 그대로 다 연금저축펀드 계좌나 개별 주식으로 투자할 수도 있다. 미국 배당주를 먼저 모으는 것도 나의 적은 연봉만으로는 3년에 1억 모으기를 꿈꿀 수조차 없기 때문에 주수입과 부수입, 최소한의 지출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저축 및 투자를 달성해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내 돈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설정해 놓고 비상금이라고 마구 써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물론 목표를 이루겠다고 내가 심각하게 불행해진다면 그 또한 의미가 없다.
올해는 5월, 6월, 7월에야 겨우 50만 원 이하 지출에 성공했는데, 또다시 8월에 실패할 위기에 놓여 있다. 돈을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주위의 좋은 사람들은 내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완벽한 외모와 패션을 갖추지 않아도, 내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나와 함께 해준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바캉스룩을 완벽하게 챙겨 입지 않아도, 온갖 물놀이 템들을 갖고 있지 않아도, 풀 빌라를 빌릴 만한 재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나는 그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월 지출 예산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돈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연 6백만 원 지출 프로젝트. 월 지출 예산을 40만 원으로 줄이고 대신 연간비 120만 원을 1년 내에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너무 했나? 그럼 연 7백만 원은? 월 40만 원 지출하되 병원비, 경조사비, 휴가비, 공연비에 연 220만 원을 쓰는 거다.
월 50만 원 지출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맬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희한하다. 그래도 내년에는 정말 1월부터 빡세게 잘 절약해서 남은 예산을 모아 연간비로 써보고 싶다. 그 와중에도 오늘 피자를 먹을까 고민했었는데, 그냥 다음에 먹기로 했다. 이번 달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미 쓴 돈, 앞으로 써야 할 돈에는 스트레스받지 말자.
그냥, 오늘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자.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나 자신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