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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 남쪽 길 위에서 #4

농원의 웃음과 선사시대의 숨결

by 꿀아빠

풀벌레 소리에 귀를 맡기며 잠든 밤,

상쾌한 공기로 아침을 맞았다.
상하농원의 조식은 그저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과 함께하는 시간,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여유였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이들은 농장으로 달려갔다.
소, 양, 당나귀, 닭, 토끼까지 셀 수 없는 동물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듯, 뛰고 달리고 웃는 모습이 농원 곳곳에 퍼졌다.

(라고 아내가 전해줬고 나는 남아서 뒷정리를ㅎ)

돌아오니 땀으로 흠뻑 젖은 아이들과 함께,

아무도 없었던 스파, 노천탕

계획에 없던 스파로 향했다.
샤워장이 따로 없는 글램핑장 사정 덕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었다.
야외 노천탕에 앉아 가을바람을 맞으니,
온수와 바람이 어우러진 그 순간만큼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풀려나갔다.


오전에는 매일유업 공장을 찾았다. 무료로 방문객들에게 공장 투어를 해준다.
아이들이 매일 마시는 우유와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니 눈빛이 달라진다.
살균, 발효, 포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며
“이 우유가 우리 집에도 오는 거예요?”라 묻는 아이의 말이 귀에 남았다.
상하농원이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매일유업이 만든 체험형 공간이라는 사실도 새삼 실감했다.

상하농원과 매일유업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상하농원이 단순한 체험형 농장이 아니라,
매일유업이 지역 농업과 연계해 만든 6차 산업

모델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얻은 원유와 농산물이 제품으로 가공되고,
다시 농원 안에서 체험과 관광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던 우유 한 잔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이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을 때, 뜻밖의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흑비양이라 불리는 양들이 여유롭게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주저 없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양과 함께 걷는 그 짧은 산책은 계획에 없던 이벤트였지만,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

장면 중 하나였다.
(계획이 틀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다소 시간이 필요했지만... 애들이 좋다면 뭐)

오후에는 고창 고인돌박물관을 찾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규모와 전시 수준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실내 전시관에서는 거대한 돌무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정을 모형으로 보여주었고,
야외로 나가면 넓은 들판 위에 수천 년을 버텨온 고인돌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이 큰 돌을 정말 사람들이 옮겼을까?”

하고 묻곤 했다.
짧은 설명보다, 눈앞에 서 있는 경험이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고창이 이렇게 풍성한 여행지라는 걸 오늘

처음 제대로 알았다.
자연, 농촌, 역사와 문화가 함께 공존하는 곳.
다음번에 아이들과 다시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가 기울 무렵, 진도를 향해 차를 몰았다.

운전대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가 참 길었지만 그만큼 가득 차

있었다는 걸 느꼈다.

밤늦게 진도에 도착했을 때, 마음속엔 한 가지 생각만 남았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여행의 하루를 이렇게 기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기반으로

적어 내려 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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