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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여름, 남쪽 길 위에서 #5

빗속의 진도 또 다른 추억

by 꿀아빠

아침부터 빗소리가 창밖을 채웠다.
진도에서의 첫날은 흐림과 비로 시작했다.
계획했던 진도타워와 케이블카는 날씨 탓에 미룰까 잠시 고민도 해봤으나 일단은 가기로 한다.


아침 식사 후, 아이들과 잠깐 공부 시간을 가졌다.
명량해전 이야기를 꺼냈다.
12척의 배로 133척을 상대했던 이순신 장군의 전투.
설민석 선생의 강의를 보여주며
울돌목의 험한 물살과 전략을 설명하자

(유튜브 설민석 님께서ㅎ)
아이들의 눈빛이 금세 반짝인다.
오늘 우리가 밟을 진도 땅이 단순한 섬이 아니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무대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많은 비와 안개등으로 인해 밖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여행 초기 때 정도 날씨였으면

기가 막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지만 어쩔 수 없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그 또한 여행의

한 장면이 될 테니까

전시장에 있던 수상 작품
현실 세계 ㅜㅁㅜ

밖은 기상상황으로 기대한 바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시관 내부는 나름 기대이상으로 잘되어있다.




비가 계속 쏟아지기에, 일정을 좀 변경해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발길이 닿은 곳이 국민해양안전관.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 재난에 대한 교육과 체험을 위해 세워진 국내 유일 시설이다.
안전을 배우고 직접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체험 프로그램은 약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첫 번째는 선박 경도 체험.
배가 좌우로 기울 때 균형을 잡는 법을 몸으로 느꼈다.
평소엔 쉽게 떠올리지 못했던 상황이지만
실제 배에 탔다고 상상하면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어진 심폐소생술 체험.
아이들에겐 낯설었겠지만
차근차근 눌러보며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본기를 익혔다.
둘째는 힘이 부족했지만
“엄마랑 같이 하면 되겠다”라며 끝까지 도전해 본다.

지진 체험에서는 건물이 흔들리는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 책상 밑에 몸을 숨기고 자세를 낮추는 단순한 행동이 생존의 핵심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줬다.

또 소방진압 체험도 있었다.
불길이 치솟는 스크린 앞에서 호스를 잡고 불을 끄는 시뮬레이션. 아이들은 불이 점점 사라지는 장면에 뿌듯해하며 “내가 껐다”라고 연신 자랑해 댄다.


마지막은 강풍 체험.
태풍 속 바람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서
몸이 휘청거리는 걸 경험했다.
아이들은 비틀거리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자연의 힘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인지는 아직 못했겠지만 ^^;)

예상치 못한 장소였지만
우리 가족만 참여하는 ‘전세 체험’이 되었다.
비 때문에 오히려 더 알찬 시간을 얻은 셈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두 아들만 데리고 숙소에 있는 인피니티풀로 향했다.
바다와 수영장이 맞닿은 풍경은 아주 근사하다.
아이들은 빗방울이 남은 하늘 아래에서 더 즐겁게 물놀이를 즐겼고, 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비가 많은 것을 바꿔놓은 하루였지만,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다.
안전을 배웠고, 가족과 더 깊은 시간을 나눴다.
여행은 결국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 또 한 번 배운다.

계속해서 내려놓고 현재에 만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기반으로

적어 내려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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