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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ewist Feb 07. 2021

가전과 살을 채우고 있습니다.

재택 문화가 바꿔놓은 집과 몸의 거대화 현상에 손가락만 움직이며.

경기도에 거주하고, 회사가 충청도에 있는 나에게 재택은 출퇴근 시간을 줄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ZOOM 대학원생'의 수업은 효율성이 낮지만,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업무 효율은 그렇게 낮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업무는 직접 물어보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재택보다는 on-site 업무를 좋아하긴 하지만, 서울에 일이 있거나 반차를 써야 하는 상황들이 있을 때 재택은 정말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재택 문화로 잠잘 때 말고는 있지 않았던 집에 있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지면서 관심이 없었던 집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집보다 회사가 편의시설을 더 잘 갖추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집에서 불편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욕구부터 구매까지 생각의 변화는 1차적으로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느낌이 처음이었고, 2차 변화는 '어차피 집에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깐!'이라는 합리화였고, 마지막으로는 '어차피 돈 쓸데도 없디!'라는 확신에 결제를 강행했다. '쿠팡'의 로켓 배송을 너무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지 않는데, '큐텐'이라던지 '알리익스프레스'라던지 해외 직구를 통해서 '가성비 템'들을 3단계의 의식변화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구구절절하지만, 국내 가전을 사지 않는 이유는 비싸기도 하고, 크기도 1인 가구에 맞춘 제품이 적고, 언젠가는 결혼을 할 것이라는 굳은 바람이 나에게는 있다.


이렇게 하나씩 채우다 보니, 침실에 라디에이터를 구매하여 내 외모는 아니고 방을 훈훈하게 만들었더니, 뭔가 건조한 거 같아서 가습기를 사고, 뭔가 하얀 벽지가 심심해 빔프로젝터를 구매하고, 빔프로젝트의 콘텐츠 활용을 명목으로 Mi Stick을 구매하고... 어찌어찌 빠른 시간에 어설픈 홈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만들어졌다. 뭔가 입이 심심하고, 아직 코로나로 카페는 위험하다며 캡슐커피머신을 사고, 출근할 때 노총각 티가 나지 않아야 한다며 스타일러 대신에 스팀다리미까지 구매했다. 기존에 샀던 삼신 가전(로봇청소기, 건조기, 식기세척기)와 공기청정기의 활용도가 더 높아지며 '잘 샀다', '가성비는 중국'이라며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집'이라는 서비스의 성장세가 큰 것 같기도 하지만..


물론, 집만 채운 게 아니었다.


양식을 채웠으면 후회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살까지 엄청나게 채우고 있다. 새로 나온 핑크색 프링글스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쿠팡에서 파는 반조리 식품은 왜 이렇게 잘 나오고, 배송은 왜 이렇게 빨라졌는지. 뒤늦은 후회로 야채, 과일들을 샀지만, 먹는 양이 확실히 많아져서 다이어트 효과는 없었고, 왜 이렇게 먹을 거에 손이 가는지 쥐포나 스낵 종류를 구매하고, 쉼 없이 먹기 시작했다. 어느덧 역대급으로 살이 찌면서, 오랜만에 돌아간 회사에서 나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기도 했다.


아쉽지만 재택이 바꿔놓은 삶은 작년 이맘때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재택이라는 문화 자체가 남의 시 시선이 있을 때와 없을 때로 구분한다면, 나도 어쩔 수 없는 K-한국인이라 남의 시선이 있을 때 조금 더 조심했던 것 같다.


'재택' 핑계는 그만하기로 하며, 나에 대한 뒤늦은 후회로 나를 관리하기로 했다.


갑자기 많이 찐 살을 원망하며 인바디까지 측정하는 체중계를 샀고, 빔프로젝터를 켜서 홈트레이닝을 하자며 요가매트를 구매했다. 그리고 스마트밴드로 체중계와 연동된 나의 스트레스와 몸무게 등의 데이터를 중국 데이터센터에 열심히 넘겨주고 있다. 


물론 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 손은 움직이고 있다. 물론 재택이 선물해준 '뽐뿌력'으로 만들어놓은 내 침실에서.



+)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이런 헤드라인이 있더라. '살림 늘고, 외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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