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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K 박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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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ewist Jan 09. 2021

처음으로 논문을 쓰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공부할 때가 아니라 결혼을 할 때라는 부모님의 충고 속에 논문 뻘짓들.

지금에서야 후회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일반대학원에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다. 비록 내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는 국내 일반대학원은 없고, 전문대학원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연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사에 오다 보니 배우는 것은 많고 재밌긴 하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정말 많이 느끼고 있다. 빨리 학업을 마치고 싶은 나에게 주변의 결혼을 하는 친구보다는 한 번씩 주변 사람들이 말하던 '악몽'이라고 하는 내가 겪지 못했던 '연구실'생활을 한 친구가 부러워지긴 한다. 물론 부모님의 결혼 잔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작년 석사 졸업과 동시에 동 대학원 박사를 바로 시작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학사도 4년(군대 제외), 석사도 4년 걸렸다. 논문을 쓰려고 마음만 먹고 쓰지 않았고, 영어성적을 제출해야 하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무튼, 토익 대박달에 겨우 점수를 맞추고 못썼던 논문을 박사 때 쓰겠다며 또 겁 없이 덤볐다.


박사에 와서 첫 학기에 대학원 환불규정을 정말 많이 봤다. 석사 때 연구보다는 실무에 맞춘 커리큘럼이라 논문을 읽을 기회가 있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보지 않았는데 박사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첫 학기 개발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내가 읽은 논문을 학생들에게 영어로 공유해야 하는데 영어가 안 읽혀서 정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꾸역꾸역 내 동반자 '파파고'를 돌리며 겨우 이해해서 발표를 진행했을 때, 그래도 '하면 된다'를 많이 느꼈던 시기인 것 같다.


그 '하면 된다'는 첫 학기를 넘기지 못했고, 어영부영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다. 도저히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논문을 그냥 써보자고 결심을 하고 데이터를 정리하고, 논문을 그냥 썼다. 석사 때 하려던 주제였기 때문에 서론은 좀 쓰여있었고, 방법도 대충 정해져 있어서 빠르게 정리하고, 교수님의 수정으로 제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남들은 한 번에 실리는 논문을 나는 5번 만에 실렸다. 나 같이 멍청한 행동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의 과정과 나라면 다시 하지 않을 일들을 공유하려고 한다.



"1, 2차 투고"

국내 학술지는 웬만하면 실어준다고 했는데, 사실 난 '게재 불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충격은 하루 정도 갔던 것 같고, 보완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다른 학회 내라는 추천을 받고 다른 학회를 내보았다. 근데 결론은 또 '게재 불가'였다. 피드백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논문의 형식에 맞지 않은 보고서'라는 부분이다. 논문과 보고서의 다름을 그때 그 피드백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3, 4차 투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고민만 하다 다른 학회지에 한번 더 내보았다. 항상 그렇듯 직장인이 회사에 신경 써야지 연구를 너무 하면 안 되지라는 개똥철학을 또 피고 있었다. 근데 의외로 '수정후 재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엄청나게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은 피드백을 보았다. 논문 심사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은 엄청 세세한 피드백. 지난 두 번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건 이 부분을 잘 수정하면 게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수정을 했다. 거의 논문을 다시 쓰다시피 원래 처음 썼을 때 보다도 훨씬 많은 공수를 투입하여 수정했다. 결론은 '게재 불가'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피드백을 다시 받았다. 그 피드백을 받고 이제 됐겠지라는 생각으로 다른 학회에 한 번 더 내보았다. 당시에 더 이상 볼 것이 없다는 자만심과 함께. 결과는 '게재 불가'. 지난번에 받았던 피드백을 보완했어야 하는데 라는 후회를 다시 또 하기 시작했다. 


"5차 투고"

이젠 진짜 마지막이길 바랬다. 해외 SCI도 아니고, 국내 학회지에서 5번이나 투고하는 나 같은 머저리가 어디 있을까? 더 이상 안 실어주면 해당 주제는 포기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최근 받은 피드백을 다시 보면서 수정을 완료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학회에 한 번 더 투고했다. 처음으로 받은 '수정 후 게재'를 받았지만, 엄청난 피드백을 다시 받았다. 사실, 투고 당시에 후보지에서 등재지로 막 승급된 학회지로 기준을 조금 낮춘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 실패(?)의 끝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또다시 미친 듯이 수정을 했다. 다시 한번 더 쓰는 느낌으로.. 그렇게 수정의 수정의 수정의 끝에 게재 결정이 되었다.


사실, 이 허튼짓 같은 과정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크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내가 만약 석사에서 했었다면 이라는 생각과 박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정신승리적인 생각이다. 사실 나는 엄청나게 많이 거절을 당했고, 지금도 퀄리티 낮은 논문이지만 그래도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논문, 그리고 학회지의 기본 형식을 꼭 알기를

사실 내 논문은 아직도 보고서 형식을 띄고 있는 직업병 가득 담긴 논문이다. 특히 공공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보고서와 논문은 다르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처음 내가 제출한 논문은 기본 논문 형식을 맞추지도 못하였고, 보고서 그 이상도 아니었다. 학회지 투고를 처음 하는 경우에는 해당 학회지의 성격을 분석하여 작성 후, 제출해야 한다.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문헌연구' '선행연구' 단락에 어떤 내용을 추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보고서 쓰듯이 열심히 '정의'를 하고 있었다. 다른 논문에서 정의한 내용을 적는 줄 알고... 중간중간 학회지에서 나의 선행연구에 '선행연구'가 아니라고 하는 피드백도 있었었다. 몰랐기 때문에, 더 많은 프로세스를 겪긴 했지만 그래도 알게 되었기에 논문의 기본 형식은 꼭 파악하고 쓰는 것이 시간이나 과정이나 줄일 수 있다. 혹시나 나처럼 무식한 게 용감한 사람이라면 투고하면서 배우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물론 돈이 든다.


학회지 논문은 아니지만, 학위논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쓰인 책이 있다. 나는 번 아웃되었을 때 꺼내어 보는 책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논문을 쓴다고 하면 선물로 보내주기도 한다. "한 번에 통과하는 논문 - 논문 검색과 쓰기 전략(한빛미디어)"이라는 책인데 사실 나같이 기본기가 없는 학생들은 한번 읽어보면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을 수도 있다. 


지도교수님과 함께 할 것

박사를 시작하고 가장 좋은 점은 지도교수님이 있다는 점이다. 지도교수님 성격도 좋으시고, 스마트하시고,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잘 봐주시고 많은 인사이트를 주시고 계시다. 이번 학회를 제출할 때도 지도교수님께서 피드백을 많이 주셨지만, 스스로 해결하려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피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 교수님과 충분히 소통하는 것, 그리고 피드백을 잘 받아 수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도교수님은 당신과 함께 연구할 소중한 사람이니깐.


가장 좋은 논문은 마무리된 논문

학문적으로 엄청나게 세상을 바꿀 거라는 목표가 있는 사람이 아닌 나에게는 마무리된 논문이 가장 좋은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영어 논문은 말도 못 하고, 한국어 논문도 보는 게 어려운데 쓰는 건 당연히 더 어려울 것이다. 사실 평가하긴 쉽지만 또 막상 하려면 너무 힘든 게 글 쓰는 일이다. 어떻게든 쓰고, 쓰고, 쓰고!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거지같이 쓰더라도 꼭 쓰는 것. 왜냐하면 수정할 거라도 있으니깐. 일단 쓰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난 학위논문 계획서를 써야 하는데 주제를 못 잡고 있다....... 누군가는 학위 논문도 아니고 학회 하나 실렸다고 그걸 또 이렇게 성공담 마냥 쓰고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너무 박사를 모르고 시작했고, 지금도 헤매고 있다. 그리고, 많이 배우는 것과는 별개로 쪽팔림을 공유하고 있어 부끄럽기도 하다. 혹시 나처럼 고생할 누군가에게 나의 나의 뻘짓과 답답함이 공감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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